테니스의 30대, 과거엔 ‘은퇴’ 지금은 ‘전성기’… 올해도 빅3 천하

입력 2019-09-10 16:56 수정 2019-09-11 12:51
라파엘 나달이 9일(한국시간) 미국 뉴욕 빌리진 킹 테니스 센터에서 열린 메이저대회 US오픈 남자 단식 결승에서 다닐 메드베데프와 4시간51분 풀세트 혈투 끝에 우승을 확정한 뒤 포효하고 있다. AP뉴시스

라파엘 나달(2위·스페인)이 남자 프로테니스(ATP) 투어 톱랭커로 올라서고 처음으로 4대 메이저대회 우승을 모두 놓친 2015년, 코트 안팎에서 나돌았던 말은 ‘단명’이었다. 빠른 발로 많이 움직이는 나달의 특성상, 체력 하락을 재촉해 30대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당시 나달의 나이는 만으로 29세였다. 나달은 33세가 된 올 시즌 메이저 2승을 챙기고 ‘황제’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테니스에서 30대는 은퇴를 고려할 나이였다. 지금은 아니다. ATP가 10일(한국시간)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US오픈 성적까지 반영해 발표한 세계 랭킹을 보면, 100위권에서 30대는 34명이나 된다. 동유럽의 강자 이보 카를로비치(78위·크로아티아)는 무려 40세에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100위권에서 최고령인 카를로비치 다음으로 높은 연령의 선수가 ‘테니스 황제’로 불리는 38세 로저 페더러(3위·스위스)다. 세계 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는 32세로, 나달보다 한 살이 어리다. 조코비치-나달-페더러로 이어지는 ‘빅3(Big 3)’가 모두 30대다.

빅3는 2010년대 ATP 투어에서 독주를 계속하고 있다. 빅3를 제외한 메이저대회 남자 단식의 마지막 우승자는 2016년 US오픈을 정복한 스탄 바브링카(24위·스위스)다. 그 이후 3년간 12회의 메이저대회는 빅3 이외의 승자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나마 20대 선수의 메이저대회 정복은 당시 29세였던 앤디 머리(328위·영국)의 2016년 윔블던 우승이 마지막이다. 과거라면 은퇴했을 30대가 오히려 전성기의 연령대로 바뀐 셈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과학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빅3는 과학적인 훈련법과 체계적인 식이요법으로 노화를 늦추면서 경험을 유지하고 있다. 과거의 테니스 선수는 근육이 기억할 수 있도록 매일 수천 개의 공을 치는 훈련법을 반복했다. 지금은 선수들이 코트에서만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근육을 강화하거나 신체·정신적 회복을 높이는 훈련을 병행하고 있다.

페더러는 코칭스태프부터 멘탈 닥터(정신력 관리자), 물리치료사에 라킷의 줄을 바로잡는 일로만 수천만원대 연봉을 받는 전문가까지 고용하고 있다. 조코비치는 식이요법에 신경을 쓰는 선수로 유명하다. 그는 소화불량으로 인한 변수까지 고려해 글루텐(곡류의 단백질)과 유제품을 섭취하지 않고, 경기 중에는 미지근한 음료만 마셔 장의 부담을 줄이고 있다.

유진선 스카이스포츠 해설위원은 “빅3의 강세는 그야말로 현대 과학의 승리”라며 “근력부터 정신력까지 일정한 수치를 정해 꾸준하게 유지하는 훈련 인프라를 갖고 있다. 최근 20대 선수들도 과학적인 훈련법을 도입하고 있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경험과 경기 운영 능력을 쌓은 빅3를 넘어서기란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테니스계에서는 빅3의 강세가 적어도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최천진 JTBC 해설위원은 “많게는 3년 뒤까지 빅3의 독주를 예상할 수 있다. 아직 30대 초중반인 조코비치와 나달은 지금의 기량을 당분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20대의 반란’이 임박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9일 미국 뉴욕 빌리진 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에서 열린 US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나달을 4시간51분 동안 풀세트로 괴롭혀 2대 3으로 아쉽게 졌던 23세 다닐 메드베데프(4위·러시아)는 빅3에 균열을 낼 20대의 선봉장으로 평가된다. 매년 기술적으로 진전을 이루는 도미니크 팀(5위·오스트리아)이나 닉 키리오스(27위·호주)도 빅3를 위헙할 기량을 가진 20대의 기수들이다.

김성배 STN스포츠 해설위원은 “20대의 기량이 빅3에 거의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내년 5월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인 프랑스오픈에서 20대 중심의 새로운 판세가 나타날 가능성도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