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페라 노조(The American Guild of Musical Artists)가 세계적인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78)의 잇단 성추행 의혹에 대한 자체 조사에 착수한다.
뉴욕타임즈 등은 8일(현지시간) 오페라 공연자와 스태프 등 8000여명이 가입돼 있는 AGMA 노조가 LA 오페라 등 오페라 단체들이 도밍고의 성추행 의혹을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 직접 조사에 나섰다고 전했다. 노조가 6일 노조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 따르면, 노조는 도밍고를 고용했던 오페라단 측에 도밍고의 혐의를 철저히 조사할 것을 요구했지만 오페라단들은 조사의 범위나 시기에 대해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도밍고의 성추행 피해를 호소한 여성은 20명에 달한다.
오페라 노조의 자체 조사는 연방 검사 출신의 J. 브루스 마페오 변호사가 맡게 된다. 조사는 특정 오페라단 또는 특정 시기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행위가 허용될 수 있었던 업계 내부의 시스템 역시 파헤치게 된다.
지난달 AP통신은 도밍고가 1980년대 후반부터 30년 넘게 여성들을 성추행해왔다고 보도했다. 당시 8명의 성악가와 1명의 무용수가 도밍고로부터 성추행을 당했으며 도밍고의 성적 요구를 거절한 경우 경력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이 중 1명은 결국 도밍고의 성적 요구에 굴복했다고 털어놓았다.
AP통신의 보도 이후 도밍고가 2003년부터 총감독을 맡고 있는 LA오페라단은 외부 변호사를 선임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조사가 어떻게 진행될 지, 결과가 공개될 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다.
게다가 성추행 의혹에도 불구하고 도밍고는 미국에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와 샌프란시스코 오페라가 그의 출연을 취소했을 뿐 유럽에서는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최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무대에 서자마자 기립박수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AP통신은 첫 보도 이후 잇따라 도밍고의 성추행 의혹을 보도했다. 11명이 도밍고로부터 피해를 당했다고 나섰고, 이 중 성악가 안젤라 터너 윌슨(48)은 실명으로 도밍고의 의혹을 폭로했다. 윌슨은 1999~2000년 시즌 워싱턴 국립오페라에서 막을 올린 쥘 마스네의 오페라 ‘르 시드’의 여주인공으로 도밍고와 함께 공연했다. 현재 댈러스의 대학에서 성악을 가르치고 있는 윌슨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1999년 분장실에서 도밍고가 자신의 옷 속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당시 결혼했다고 강조했지만 도밍고는 계속 신체 접촉을 요구했고, 결국 뺨에 키스하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고 밝혔다.
AP는 1999년 10월 4일 공연을 시작한 ‘르 시드’의 리허설 당시 윌슨이 쓴 일기장을 공개했다. 일기장에는 윌슨이 도밍고의 성추행에 대해 “신이시여 제발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적어 놓았다.
윌슨은 지난 8월 도밍고가 1980년대 후반부터 8명의 오페라 가수와 무용수 한 명을 성추행했다는 AP 보도를 본 뒤 미투(나도 당했다)에 동참하기로 했다. 그는 “내가 이 기회를 침묵으로 넘겨버리면 20배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걸 알았다”면서 “음악 분야가 젊은 여성들에게 최소한 공평한 기회를 줄 수 있는 진실성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윌슨의 미투 폭로 이후 댈러스 오페라단은 내년 3월 11일 예정된 갈라 공연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타트라,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에 이어 3번째다. 댈러스 오페라의 결정이 미 오페라 무대에서 ‘도밍고 아웃’ 바람을 더욱 확산시킬지 주목된다.
다만 윌슨의 폭로가 나온 지난 5일 도밍고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의 리허설 무대에 섰다. 그는 이달 25일부터 공연되는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스’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MET는 도밍고 성희롱 의혹에 대한 LA 오페라의 조사 결과를 일단 지켜본 후, 그를 본공연에 올릴지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