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의회의 반란으로 정치 생명의 최대 위기를 맞은 보리스 존슨 총리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그간 대립각을 세워온 유럽연합(EU) 측에 도움을 청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야권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연기’ 입법 추진으로 정치적 명운을 건 ‘10월 말 무조건 브렉시트’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되자 적에게까지 손을 내미는 모양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8일(현지시간) 존슨 총리가 핵심 보좌관들과 회의를 갖고 의회의 ‘노딜(no deal)’ 반대파가 통과시킨 ‘노딜 방지법’을 합법적으로 저지할 전략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회의에선 존슨 총리가 노딜 방지법에 따라 EU측에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낼 때 영국 정부는 예정된 브렉시트 시한인 오는 10월 31일 이후로는 어떠한 지연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을 함께 동봉해 전달하자는 방안이 심각하게 고려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여당인 보수당 의원 21명까지 포함된 영 의회 반란군은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는 존슨 총리에 대대적 반기를 들어 ‘브렉시트 3개월 연기’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노딜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을 여왕이 재가하면 존슨 총리는 법적 구속력에 따라 다음달 19일까지 EU와 브렉시트 교섭을 진행하고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EU집행위원회에 직접 서한을 보내 ‘리스본조약(EU 미니헌법) 50조’ 연장을 요청해야 한다. EU 탈퇴희망국은 50조에 따라 2년 간 EU측과 협상을 진행한 뒤 탈퇴하는데 EU는 영국의 요청에 이미 두 차례나 탈퇴일을 연기해줬다.
존슨 내각의 서한 전략은 의회 반란파가 ‘총리가 고의로 노딜 방지법을 어기면 헌정 질서 유린으로 감옥에 갈 수 있다’고 압박하는 상황에서 이를 우회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법률을 지켜 범야권의 공세를 피하되 영국의 잇따른 브렉시트 연기 요청으로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EU측 상황을 이용해 EU가 직접 브렉시트 연기를 막도록 하자는 것이다.
영국 내각의 한 소식통은 “(절차에 따라 EU에) 보내야 하는 정해진 서한이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총리가 다른 서류를 보내지 말라는 법이 있나.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존슨 총리의 최측근인 사지드 자비드 내무부 장관도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법을 준수할 것”이라며 우회 통로를 찾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총리는 사퇴하지 않을 것이며 다음 달 31일 EU를 탈퇴한다는 정부의 약속도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EU측이 존슨 총리의 구조 요청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EU주축국인 프랑스의 장이브 로드리앙 외무장관은 방송 인터뷰에서 “현 상황에서 브렉시트 추가 연기는 안 된다”며 “우리는 세 달마다 이런 일을 또 겪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