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빠르게 저하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일할 수 있는 인구가 줄어드는 데다 주력 산업 성장세는 둔화 국면에 들어섰다.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커진 대외 불확실성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더욱 떨어뜨리는 외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국 권지호 김도완 지정구 과장과 김건 노경서 조사역은 9일 한은 조사통계월보에 수록한 보고서에서 “수정·보완된 방법론을 이용해 재추정한 결과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 속도가 기존 전망보다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5년 단위로 새롭게 산출한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잠재성장률은 2001~2005년 5.0~5.2%에서 2011~2015년 3.0~3.4%로 하락한 데 이어 2016~2020년에는 2.7~2.8%로까지 떨어졌다.
2001~2005년과 2006~2010년 잠재성장률은 각각 4.8~5.2%, 3.7~3.9%였던 기존 추정치보다 상향 조정된 반면 2016~2020년은 2017년 8월에 제시된 2.8~2.9%에서 0.1% 포인트 낮아졌다. 2011~2015년은 기존 추정치를 유지했지만 실제 성장률은 사실상 턱걸이 수준(연평균 3.1%)이었다. 2001~2005년과 2006~2010년의 실제 성장률은 각각 연평균 5.0%, 4.3%였다.
평가가 아직 끝나지 않은 2019~2020년의 잠재성장률은 2.5~2.6%로 추정됐다. 권 과장 등은 “2019~2020년 잠재성장률이 2016~2020년 평균보다 0.2% 포인트가량 낮은 것은 성장률의 추세 하락이 최근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최근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것은 총요소생산성 개선세가 정체된 가운데 노동과 자본 투입 증가세가 둔화된 데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향후 잠재성장률은 더욱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총요소생산성은 유무형의 요소를 모두 반영한 생산능력을 말한다.
2001~2005년 연평균 잠재성장률 5.1% 중 2.2% 포인트를 차지했던 총요소생산성의 성장률 기여도는 2011~2015년 3.2% 중 1.0% 포인트로 축소됐다. 2019~2020년에는 2.5% 중 0.9% 포인트를 기여하는 데 그쳤다.
잠재성장률 추가 하락을 예상하는 이유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빠른 생산연령인구 감소와 주력 산업 성숙화, 불확실성 확대 등에 따른 추세적 투자 부진이다. 한은 조사팀은 “노동투입 기여도는 2016년 이후 빠르게 하락했다”며 “15세 이상 인구의 증가세 둔화가 주된 요인”이라고 지목했다.
2001년부터 2015년까지 0.7~0.8% 포인트를 차지했던 15세 이상 인구의 성장률 기여도는 2016년 이후 0.4% 포인트로 반 토막이 났다. 노동의 질이 성장률에 기여하는 몫도 2001~2010년 0.7% 포인트에서 2016년 이후 0.4% 포인트로 꺾였다.
자본투입의 성장률 기여도는 2001~2005년 2.1% 포인트에서 2019~2020년 1.2% 포인트로 축소됐다. 조사팀은 “(자본투입 기여도의 큰 폭 둔화는) 우리나라 경제가 성숙기에 진입하면서 나타나는 투자 둔화 현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최근에는 글로벌 성장 모멘텀(탄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미·중 무역분쟁, 일본 수출 규제, 노딜 브렉시트(영국의 무조건적 유럽연합 탈퇴) 가능성 등으로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투자회복이 지연되고 있다”며 “이러한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 자본축적이 저하돼 잠재성장률을 하락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덧붙였다.
한국 경제는 당분간 실제 GDP가 잠재 GDP를 밑도는 상황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됐다. 조사팀은 “2018년 중 제로수준에 근접했던 GDP갭률(실제 GDP와 잠재 GDP의 격차)은 2019년 중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상당 폭 하회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마이너스로 전환됐다”며 “2020년에 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회복되더라도 GDP갭률은 현재의 마이너스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은이 지난 7월 하향 조정한 올해 경제성장률은 2.2%로 잠재성장률 추정치를 0.3~0.4% 포인트 밑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