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앞두고 ‘탈레반 비밀회동’ 추진 후폭풍… “전쟁 계속될 것”

입력 2019-09-09 17:0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11 테러 발발 18주년을 앞두고 탈레반 지도자들과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비밀회동을 하려다 취소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다. 당시 테러에 협조적이던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를 9·11 테러 대응책을 논의한 장소에 초대한 것이어서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갑작스러운 비밀회동 추진과 취소 등이 아프간 사태의 불확실성만 높였다는 우려도 있다.

미국 CNN방송, 뉴욕타임스(NYT) 등은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프간 탈레반 반군과의 비밀회동을 위해 탈레반 지도자들을 미국으로 초대한 사실이 알려져 비난이 거세다고 보도했다.

여당인 공화당의 비판이 이목을 끌었다. 9·11 테러 당시 공화당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테러와의 전쟁’에 앞장섰다. 군 출신 애덤 킨징어 공화당 하원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9·11 (테러)를 포기하지 않고 악행을 계속하는 테러조직 지도자들이 우리의 위대한 나라로 오는 것을 절대 허락해선 안 된다”고 썼다. 리즈 체니 공화당 하원의원도 “캠프 데이비드는 미국인 3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지도자들이 대응책을 세우기 위해 모인 장소”라며 “당시 알카에다를 지원한 탈레반의 누구도 발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미 하원 군사위원회 소속 마이클 월츠 공화당 의원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을 ‘테러리스트’로 지칭하며 “9·11 테러 18주년을 앞두고 미국 땅을 밟는 모습을 결코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탈레반이 트럼프 대통령의 초대를 ‘승리 선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우려스럽다며 “탈레반은 평화에 대한 의욕을 보인 적이 없다. 그들은 휴전에 동의한 적도 없고 공격을 계속했을 뿐이다. 오늘 아침에도 미군 병사의 시신이 관에 담겨 미국으로 돌아왔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트위터에 탈레반 최고지도자들과의 비밀회동 소식이 예정됐지만 최근 카불에서의 테러가 탈레반에 의한 것이었다며 회동을 취소하고 평화협상도 중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방식은 도마에 올랐다. 무리하게 평화협상을 진행시키고, 갑작스럽게 비밀회동을 취소하는 등 아프간 불확실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은 CNN에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정책을 일종의 ‘게임쇼’처럼 다루는 또 다른 예”라고 지적했다. 훌리안 카스트로 전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은 “트럼프의 계획은 사람들이 지쳐하는 변덕스러운 행동”이라며 “협상에 관한 한 아주 오랜만에 겪은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꼬집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라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며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이제 폭력이 심화될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다. 전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비밀회동 취소가 트럼프 행정부의 내부 갈등만 노출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아프간 평화협상 무산은 트럼프 행정부 내부 갈등을 조명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전쟁에 따른 각종 비용을 이유로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되는 아프간 전쟁에서 철수하겠다고 주장해왔고 약 1년 전부터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측근들조차 탈레반의 계속된 테러로 아프간 철군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친미 성향인 현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에게 몰려 생존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