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ASF) 여파로 세계 최대 돼지고기 생산국이자 소비시장인 중국에서 돼지고기 파동이 계속되고 있다. ASF 확산을 막기 위해 이미 1억 마리 가량이 살처분되면서 돼지고기 공급량이 급감해 가격이 치솟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일부 지역에서 싼값에 돼지고기를 살 수 있는 사실상의 ‘배급제’를 시행하고, 돼지고기 대체품 생산을 적극 장려하는 등 돼지고기 가격 안정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9일 중국 주요 언론에 따르면 지난달 26일~이달 1일 중국 전역의 돼지고기 도매가격 평균은 1kg 당 34.59위안(약 5800원)으로 전 주에 비해 9% 가량 상승했다. 한 주 전인 지난달 19~25일 돼지고기 평균 가격은 kg당 31.77위안(5300원)이었다. 6월초만 해도 돼지고기 가격은 kg 당 20.69위안에 불과했었다. 불과 3개월 사이에 60% 이상 오른 것이다.
돼지고기 가격이 급등하는 것은 지난해 8월 중국에서 ASF 발병 후 중국 전체 돼지 사육규모의 3분 1에 가까운 약 1억마리가 살처분된데다 추석과 국경절을 앞두고 수요가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미·중 무역전쟁으로 미국산 돼지고기에도 10% 추가 관세가 부과돼 돼지고기 관세가 총 72%로 오른 것도 작용했다. 중국 정부는 유럽산 돼지고기 수입을 늘리고 있지만 수요를 맞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돼지고기 값이 폭등하면서 가정에서 돼지고기를 사재기해 냉장고를 꽉 채운 사진도 SNS에 나돌고, 식당에선 돼지고기 값 상승분을 곧바로 반영할 수 없어 손해보고 장사한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돼지고기를 싸게 공급하거나, 닭고기 등 돼지고기 대체품을 적극 권장하는 등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가격 폭등세가 진정기미를 보이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남부 광시좡족자치구 난닝시는 시내 10개 주요 농산물시장에 돼지고기 가격을 이전 10일간의 시장가격보다 10% 싸게 팔도록 하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돼지고기 판매상은 오전 9시부터 시작해 돼지고기 1마리 분량을 10% 싸게 팔고, 소비자는 할인 가격으로 하루 1kg을 살 수 있다. 가게당 하루 1마리를 다 팔면 할인판매는 중지된다. 싼값에 고기를 사고파는 한시적 ‘배급제’인 셈이다.
푸젠성에서는 돼지고기 구매한도를 1인당 2kg 이내로 제한하는 조치도 시행되고 있다. 광둥성은 지난 7일부터 이달 30일까지 냉동육 1600t을 시장 가격 보다 10% 낮은 가격에 방출한다.
국가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돼지고기 대체품으로 꼽히는 육류인 닭·오리고기, 소고기, 양고기의 올해 상반기 생산량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6%, 2.4%, 1.5% 늘었다. 닭고기와 오리고기는 생산주기가 짧고 다량 생산할 수 있어 돼지고기 부족분을 채우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정부는 사재기 단속, 돼지 사육농가 보조금지급, 돼지사육 장려, 내동육 공급확대 등의 수급 안정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돼지고기 파동이 계속될 수 있어 상황이 어느 정도까지 악화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 사육중인 돼지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0% 가량 줄어든데다 정부가 구체적인 수치 등을 공개하지 않아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진정 추세인지 불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중국의 돼지고기 부족현상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