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배우가 인간의 다양한 정서와 삶의 애환을 드러내는 연기를 보여줬어요. 아이돌 스타로서의 이미지는 완전히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어요.”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9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윤 교수가 치켜세운 연기자는 바로 아이유(26). 배우로 활동할 땐 본명인 ‘이지은’을 사용하는 아이유는 최근 종영한 드라마 ‘호텔 델루나’(tvN)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격찬을 이끌어냈다. 아이유의 극 중 역할은 귀신들이 묵는 호텔 델루나를 1300년간 운영하는 주인공 장만월 역. 호텔 델루나는 판타지 호러 로맨스를 버무린 작품이었는데, 아이유의 호연 덕분인지 최종회 시청률이 12%(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윤 교수는 “아이유는 복잡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안다”며 “연기자로서의 잠재력이 상당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연기의 스펙트럼도 갈수록 넓어지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드라마 제작진 역시 아이유에게 만족감을 표시했다. 극본을 쓴 홍자매(홍정은·홍미란)는 “장만월은 세고 화려한 캐릭터였지만 쓸쓸함을 담고 있어야 했는데, 아이유가 딱 장만월이었다”며 “아이유가 이번 작품에서 자신의 매력을 모두 보여준 것 같다”고 말했다.
특이한 건 아이유가 과거부터 배우로 빼어난 활약을 펼친 연기자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2008년 가수로 데뷔한 그는 이듬해 ‘마쉬멜로우’가 히트하고 2010년에는 ‘좋은날’ ‘잔소리’가 사랑을 받으면서 최정상급 뮤지션으로 자리매김했다. 아이유는 지금도 ‘음원퀸’으로 통한다. 하지만 ‘배우 이지은’에 대해서는 자주 물음표가 따라붙었던 게 사실이다.
아이유가 연기자로 첫발을 내디딘 건 2011년 드라마 ‘드림하이’(KBS2)를 통해서였다. 이때만 하더라도 아이유의 연기 도전은 인기에 편승해 잠깐 시도하는 ‘외도’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아이유는 꾸준히 배우 활동을 병행하며 연기력을 쌓았다. 2013년에는 ‘최고다 이순신’ ‘예쁜 남자’(이상 KBS2)에, 2015년과 2016년에는 각각 ‘프로듀사’(KBS2)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SBS)에 출연했다. 표정이 어색하다는 식의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곤 했지만, 아이유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차례로 선택하면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배우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였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tvN)에서 신산한 삶을 사는 주인공 이지안 역을 연기하며 호평을 끌어낸 게 전환점이 됐다. 아이유의 ‘인생작’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아이유는 같은 해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페르소나’에서도 팔색조 같은 매력을 보여주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김선영 드라마평론가는 “아이유는 가수로서 쌓은 자산을 영리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자신을 매력적으로 꾸밀 방법은 무엇인지 잘 아는 것 같다”며 “오히려 나이가 들면 지금보다 더 훌륭한 연기를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전문가들 역시 비슷한 전망을 내놓았다. 드라마평론가인 김공숙 안동대 융합콘텐츠학과 교수는 “호텔 델루나, 전작인 나의 아저씨를 보며 아이유가 천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똑똑하게 캐치해내는 실력이 있다”면서 “아마도 아이유는 꾸준히 변신을 시도하면서 더 좋은 연기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