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땜질 대입개편’…학종 공정성의 3가지 치명적 의문

입력 2019-09-09 05:01 수정 2019-09-09 05:01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 입시 의혹과 문재인 대통령의 ‘대입 전반 재검토’ 주문으로 대입 제도는 1년 만에 또다시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6일 “학생부종합전형(학종) 공정성을 높이겠다”고 밝힌 상태다. 정부는 수상경력 같은 비교과 영역을 축소하거나 자기소개서를 손질하는 등의 방안을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수시 전형은 이런 미세조정만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납득시키기 어려운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밀실에서 졸속으로 추진하는 개편안으로는 학종 공정성 제고는커녕 조 후보자 딸 논란으로 광범위한 대중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정시 확대 요구도 잠재우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 역시 나온다.

①여전한 학교·교사별 격차
외부 스펙을 광범위하게 허용하던 입학사정관제와 달리 학종은 학교 내 활동을 중점적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각 고교의 입시 여건은 천차만별이다. 특정 고교에 대한 대학사회의 평판부터 학습 분위기, 동아리 등 입시 관련 인프라까지 현격한 차이가 있다. 이는 학생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 가능한 부분이 아니다.

교사의 질 역시 소위 ‘복불복’이다. 풍부한 경험과 열정으로 학생부를 성의 있게 써주는 교사를 만난다면 행운이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라면 학생의 노력은 공정한 평가를 받기 어렵다. 지난해 대입 개편안 공청회에서 한 학부모가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학생부가 달라지는데 이게 공정한가”라고 울분을 토했으나, 교육 당국은 “학생부 편차 줄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교육부도 학생부 기재 항목을 간소화하고 내용을 표준화하며 교사 연수를 강화하는 등의 시도는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시간이 필요한 장기적 대책이다. 반면 대입은 학생들에게 눈앞의 현실이다. 교육 당국이 열심히 하는 교사들을 독려할 수단도 미비한 상황이다. 교원 단체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교사 평가는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다.

숙명여고. 뉴시스

②대학-교사-학부모 유착 우려
고교 교무부장인 아버지가 두 딸의 내신 성적을 올리려고 정기고사 문제를 유출한 ‘숙명여고 사태’가 터지자 교육 당국은 상피제(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교사 근무 제한을 두는 것)를 권고하고 학교 보안을 강화하는 식의 미봉책으로 마무리했다.
광주의 한 여고에서 교사들이 조직적으로 학생부 조작을 하다 적발됐고, 학생과 성관계를 맺고 성적을 바꿔준 교사가 구속되기도 했다. 하지만 교육 당국은 학생부 수정권한 일부를 손보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또 상류층의 입시 컨설팅 실태를 조명한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인기를 끌자 학원을 손보겠다고 나섰으나 유야무야됐다.

입시 전문가들은 교육 당국과 몇몇 정치인들이 여론 무마용으로 내놓는 땜질 처방이 수시 제도를 옹호해온 교육계 전반을 향한 대중의 시선을 더욱 싸늘하게 만들고, 수시 전형의 장점마저 희석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부정 우려로 수능은 출제자와 학생이 철저히 분리된다. 갈수록 중요해지는 내신 평가는 평가자인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같은 공간에서 늘 마주하므로 유출 우려는 상존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비교과 영역에서 교사와 학부모의 친소 관계에 따른 기회 불평등, 고교 차원의 ‘될 아이 밀어주자’ 관행은 미세조정만으로 해소되기 어려운 문제다.

공정성 문제가 곪아 터지고 있지만 교육 당국은 “일단 교사를 믿으라”란 입장이다. 학생부 조작이나 정기고사 유출은 범죄 영역이지 정책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극소수 사례 때문에 교육정책의 틀을 흔들 수 없다는 주장이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연합뉴스

③투명한 평가정보 공개도 ‘글쎄’
정부·여당은 학종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평가 정보를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어떤 평가 기준에 따라 어떻게 평가했고, 왜 합격했고 왜 떨어졌는지 납득 가능한 수준으로 공개한다면 학종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평가 기준과 방식이 공개되면 관련 사교육 폭증을 막기 어려워진다. 실제 한 번은 어려서 곤충 연구에 몰두했던 학생이 그 연구 실적으로 명문대에 합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비슷한 컨설팅이 횡행했다. 투명성이 높아질수록 사교육은 편해진다. 예컨대 ‘○○대 필수 스펙 준비’ 등으로 불안 마케팅도 가능해진다.

학종은 근본적으로 정성평가다.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하므로 투명성과 어울리는 전형이 아니다. 예를 들어 ‘특정 학생의 학업 성적이 떨어져도 봉사 활동을 많이 한 학생이 의사가 돼야 할까’ 아니면 ‘봉사 실적이 충분하지 못해도 성적이 탁월한 학생을 뽑아야 할까’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생명을 다루므로 똑똑해야 한다” “생명을 다루므로 심성이 따뜻해야 한다”는 두 주장 모두 틀렸다고 볼 수 없다. 다만 평가자 개인의 기준에 따라 이 학생의 당락이 결정될 수도 있는 문제다. 결국 평가 기준을 공개한다 해도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신·편입생 정보를 공개하는 방식은 유용한 옵션이 될 수 있다. 합격생의 출신 지역, 고교, 소득분위, 동문이나 기부금 다액 자녀 현황 등을 대학별 비교 가능한 수준으로 공개하는 방안이다. 데이터 공개로 대학에는 사회적 압력이 작용하며, 국가장학금이나 재정지원과 연계하면 등록금 억제 정책처럼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다만 대학 사회 반발은 교육부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이번 개편안은 당·정·청 회의 몇 번으로 가닥이 잡힐 전망이다. 따라서 ‘밀실 논의’ 우려가 제기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학부모 단체를 비롯한 교육계에선 ‘정부와 여당이 조 후보자 사태를 무마하려고 불쑥 대입 개편을 던져놓고 당사자들을 빼고 논의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학종으로 학생을 뽑아야 하는 대학도 학생부를 직접 작성하는 교사도 논의 구조에서 빠져선 곤란하다고 주장한다. 양측은 “(당·정·청에서 정하고) 의견만 구하는 시늉으론 올바른 해법에 도달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