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존슨이 마주한 3번의 배신…시련의 끝은 감옥?

입력 2019-09-09 05:00

아무 합의 없이 유럽연합(EU)을 떠나는 ‘노딜(no deal) 브렉시트’를 밀어붙이겠다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계획이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여당인 보수당 의원이 하원이 노딜 방지법을 통과시키기 직전 당을 탈당해 공개 반기를 든 데 이어 앰버 러드 고용연금부 장관도 7일(현지시간) 존슨 총리에 대한 반발로 사임하면서 ‘사면초가’ 상태가 심화되고 있다. 이틀 전 친동생이자 기업부 부장관인 조 존슨이 사퇴의사를 밝힌 것도 뼈아프다. 우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됐던 이들은 물론이고 핏줄마저 등을 돌리는 모양새다.

내각 핵심장관의 ‘세번째 배신’…추가 배신 이어질까?
러드 장관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존슨 총리에게 보낸 사퇴 서한을 공개하고 “내각에서 사임하고 보수당에서도 탈당한다”며 탈당 후 반란파에 합류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노딜 브렉시트를 추진 중인 존슨 총리가 마주한 세번째 배신이다.

러드 장관은 존슨 총리가 하원 표결 당시 자신의 노딜 기조에 반대해 반란표를 던졌다는 이유만으로 여당 의원 21명을 즉각 출당 조치한 일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제명 의원 가운데는 테레사 메이 전 총리 시절 내각에서 재무장관과 법무장관을 지낸 필립 해먼드와 데이비드 고크, 하원 최장수 현역 의원인 켄 클라크 전 재무장관 등 당의 원로·중진이 다수 포함됐다. 윈스턴 처칠 전 총리의 외손자 니컬러스 솜스 의원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데, 존슨 총리는 그간 처칠 전 총리에 대한 존경심을 자주 피력해왔다.

러드 장관은 “선량하고 당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며, 중도 노선을 견지해온 보수당원들이 쫓겨나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며 “(존슨 총리의 조처는) 품위와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맹비난했다.

존슨 총리의 브렉시트 전략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졌다. 메이 내각에서도 내무장관을 지낸 러드 장관은 노딜 가능성을 남겨둔 채 EU와 협상을 하는 것이 더 유리한 합의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판단 하에 존슨 총리의 전략을 지지하고 새 내각에 합류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부의 목표는 ‘합의’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토로했다. 존슨 총리가 어떠한 전략도 없이 노딜 그 자체를 밀어붙이기 위해서만 매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번째 배신이 추가 배신으로 번질 가능성도 상당하다. 영국 더타임스는 “현재 존슨 내각에서 최소 6명이 러드 장관의 생각에 동의하고 있다”며 “이중 1명 이상이 사임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엠버 러드(오른쪽) 영국 고용연금부 장관이 7일 보리스 존슨 총리에 반기를 들어 내각 사퇴와 탈당 의사를 밝혔다. 사진은 2017년 12월 각료회의를 마치고 총리관저를 떠나는 보리스 존슨 당시 외무부 장관과 러드 장관. EPA연합뉴스

‘공개망신’ 첫번째 배신, ‘핏줄마저 등돌린’ 두번째 배신
영국 하원의 노딜 브렉시트 반란군은 지난 3일 ‘의사일정 주도권’을 존슨 내각에서 하원으로 가져오는 표결을 실시해 승리했다. 이튿날 단 하루동안 주도권을 빼앗아오는 조처에 불과했으나 하원 주도하에 ‘노딜 방지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선행 작업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컸다. 실제로 브렉시트 시한을 3개월 미루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이 법안을 하원 반란군이 4일 통과시키면서 브렉시트가 내년 1월 31일로 연기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무엇보다 3일 표결에서 나온 한 여당 의원의 ‘탈당 퍼포먼스’는 존슨 총리가 향후 마주하게 될 추락을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이 첫번째 배신과 함께 존슨 총리의 리더십과 권위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당시 필립 리 의원은 존슨 총리가 웨스터민스터 의사당 하원 회의실에서 연설을 하는 도중에 보수당쪽 자리에서 일어나 야당쪽으로 걸어가는 방식으로 탈당을 감행했다. 총리의 면전에서 반대 의사를 밝히며 공개 망신을 주기 위한 의도였다. 그가 야당 의원들 사이에 자리를 잡자 야당쪽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고, 존슨 총리는 당황했다.

더욱 뼈아픈 일은 리 의원의 탈당으로 보수당이 다수당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현재 영국 하원의 과반은 320명인데 보수당은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북아일랜드민주연합당(DUP) 의석수를 합쳐 간신히 320석을 유지하고 있었다. 고작 1석의 이탈만으로도 치명타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당인 보수당 연정의 의회 과반 점유가 깨지면서 의회에서 원하는 방안을 통과시키기 더 어려워졌다. 존슨 내각도 국정 운영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

그 뒤를 이어 존슨 총리의 친동생인 조 조슨 기업부 부장관도 5일 직위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며 형에게서 등을 돌렸다. 존슨 부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최근 몇 주간 가족에 대한 충심과 국익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이었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가디언은 ‘충성’은 형 존슨 총리에 대한 감정을, ‘국익’은 브렉시트 강경 전략에 대한 반대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형제애도 중요하지만 형의 전략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의사를 드러낸 것이다. 데일리미러는 이날 1면에 “보리스의 가족마저 그를 못 믿는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친동생인 조 존슨 기업부 부장관. 블룸버그통신

‘내부타격’ 존슨은 이제 어디로
잇따른 내부 배신으로 정치적 위기에 처했지만 존슨 총리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외려 “브렉시트를 연기하느니 시궁창에 빠져죽겠다”며 큰 소리를 치고 있다. 하원에서 가결된 노딜 방지법이 6일 상원마저 통과하고 여왕 재가만을 남겨둔 상태지만 그는 EU본부에 브렉시트 추가 연기를 절대 요청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노딜 브렉시트 반란군은 존슨 총리가 의회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일부러 법을 위반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BBC는 보수당 제명 의원들과 범야권 의원들이 존슨 총리가 노딜 방지법을 무시할 경우를 대비해 소송 등 법적 절차까지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수당 제명 명단에 이름을 올린 도미닉 그리브 전 검찰총장은 BBC에 “여왕의 노딜 방지법 재가 이후에는 존슨 총리에게도 법률 준수의 의무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존슨 총리가 노딜 방지법을 따르지 않을 경우 법원으로 끌려갈 수 있다”며 “판결에 따라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존슨 내각은 마지막 승부수로 오는 9일 다시 한 번 조기총선 카드를 밀어붙이겠다는 방침이다. 다음 달 15일 조기총선을 실시해 의회를 해산하고 돌파구를 모색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이미 한번 실패한 방법인데다 범야권이 재투표에서도 반대 혹은 기권하기로 뜻을 모은 상태라 하원을 통과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