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를 이용해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54) 전 충남도지사의 대법원 선고가 9일 열린다. 안 전 지사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유죄로 뒤집혀 법정구속됐다. 유일한 직접 증거인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놓고 하급심 재판부의 판단이 갈렸다. 지난해 4월 처음으로 ‘성인지 감수성’을 언급한 대법원이 안 전 지사 판결을 계기로 보다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9일 오전 10시10분 피감독자 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의 상고심 선고기일을 연다. 안 전 지사는 2017년 7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비서 김지은씨에게 10차례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도지사이자 차기 대권 주자였던 안 전 지사가 ‘위력’을 가졌다고 인정하면서도 “피해자의 자유 의사를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위력이나 지위를 남용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 김씨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게 골자다. 1심 재판부는 “김씨는 고학력에 사회 경험도 상당한 사람” “성숙한 전문직 여성”이라고 평가하며 “안 전 지사가 김씨를 길들이거나 압박하는 행위를 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2심은 “피해 진술이 일관성 있고,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진술하기 어려운 세부적인 사항까지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며 안 전 지사에게 징역 3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폭로한 경위가 매우 자연스럽고, 안 전 지사를 무고할 동기나 이유가 있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다”며 “안 전 지사의 지위나 권세는 피해자의 자유 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무형적 세력”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할지도 관심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4월 “법원은 사건을 심리할 때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며 “성희롱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2차 피해 등에 노출돼 있는 피해자의 관점에서 그의 진술이나 행동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 전 지사의 1·2심은 모두 이러한 대법원 판결을 인용했지만 피해자의 진술에 대한 판단은 서로 달랐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