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14·한강중)이 금의환향했다. 한국 유일의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인 김연아(29·은퇴)가 15년 전 처음으로 금메달을 수확해 ‘전설’의 서막을 열었던 국제빙상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를 정복하고 조국 땅을 밟았다. 이시형(19·고려대)의 남자 싱글 은메달로 같은 대회 남녀 입상자를 모두 배출한 한국 피겨는 김연아의 은퇴 이후 5년 침체기를 끊고 르네상스를 예고했다.
이해인은 8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2019-2020 ISU 주니어 그랑프리 2차 대회 여자 싱글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입국장으로 들어섰다. 입국장에서 곧바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대회를 앞두고 (김)연아 언니의 경기 영상을 돌려봤다. 연아 언니의 뒤를 이어 기쁘다”며 “6차 대회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어 파이널에 진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해인은 지난 7일 라트비아 리가에서 끝난 이 대회 여자 싱글에서 쇼트프로그램 66.93점과 프리스케이팅 130.70점을 합산한 총점 197.63점으로 우승했다. 2012년 슬로베니아 5차 대회 챔피언 김해진(22·은퇴) 이후 7년 만이자 한국 선수 사상 세 번째로 주니어 그랑프리 금메달을 수확했다.
김연아는 이 대회 최초의 한국인 우승자다. 2004년 9월 5일 헝가리 2차 대회에서 총점 148.55점으로 우승했다. ‘불모지’ 한국 피겨 최초의 국제대회 금메달. 김연아의 전설은 그렇게 시작됐다. 김연아는 이로부터 6년 뒤인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유일의 피겨 금메달리스트로 성장했다.
김연아가 주니어 그랑프리를 정복했을 당시 나이는 14세. 그 이듬해인 2005년에 태어난 이해인은 김연아와 같은 나이에 대업을 달성했다. 김연아가 은퇴한 2014년 이후 곽민정(25·은퇴) 최다빈(19·고려대) 유영(15·과천중) 등이 ‘포스트 김연아’로 불렸지만, 현 세대에서 주니어 그랑프리를 정복한 한국 선수는 이해인이 유일하다.
이해인은 오는 25일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열리는 6차 대회에 출전한다. 이 대회 성적에 따라 올 시즌 결승전 격인 파이널로 진출할 수 있다. 이해인은 “내가 할 있는 선에서 점프를 완벽하게 소화한 뒤 조금씩 기술의 난도를 높이겠다. 트리플 악셀(3회전 반 점프)도 간간히 훈련하고 있다”며 “좋은 선배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 선배들과 연기를 비교하고 직접 물으면서 조언을 얻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니어 그랑프리는 본무대인 시니어 그랑프리의 전초전 격으로 여겨진다. 현역 선수의 전성기가 20세 전후인 피겨 여자 싱글의 특성상 주니어 그랑프리는 곧 차기 동계올림픽의 판세를 가늠하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이해인의 금메달과 이시형의 은메달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의 입상권을 기대하게 만드는 쾌거로 볼 수 있다.
이해인과 같은 대회에서 남자 싱글에 출전한 이시형은 이번 대회 쇼트프로그램에서 77.30점, 프리스케이팅에서 141.01점을 합산한 총점 218.31점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쇼트와 프리에서 각각 자신의 시즌 베스트를 달성했다. 우승자인 러시아 안드레이 모잘레브(223.72점)와 점수 차이는 5.41점. 앞서 그의 이 대회 최고 성적은 8위였다. ‘6전 7기’로 출전한 이 대회에서 마침내 메달을 손에 넣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