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삼청로 금호미술관이 30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순수 미술이 아닌 가구를 내놓았다. ‘바우하우스와 현대생활’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전시에는 마르셀 브로이어, 루드비히 미스 반데어로에 등 바우하우스 디자이너들과 이들로부터 영향받은 루이지 콜라니, 레이 임스 등 유럽·미국의 국제적 디자이너들의 오리지널 디자인 가구 120여 점이 소개되고 있다.
개수대, 인덕션, 선반이 나뭇가지처럼 매달린 슈테판 베베르카의 ‘키친 트리’, 어린이용 침대와 책걸상, 옷장이 직사각형의 공간 안에 치밀하게 구현된 루이지 콜라니의 ‘라펠키스트’ 등 지금 봐도 편리한 실용성과 경쾌한 미감을 두루 갖춘 실내 장식 가구들의 기원이 1920년대라는 것이 놀랍다.
1차 대전에서 패전한 뒤 독일에서는 어떻게 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시민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할 수 있을까가 시대적 화두였다.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출범한 조형 학교 ‘바우하우스’가 공유한 미술 철학이기도 했다.
산업용 소재였던 강철 파이프를 의자 틀에 적용한 마르셀 브로이어의 ‘ㄷ’자 다리의 캔틸레버 의자, 크리스천 델이 창안한 무채색의 단순한 ‘카이저 이델’ 조명, 빌헬름 바겐펠트의 주전자와 유리 제품 등 시대정신에 투철했던 예술가들의 실험과 혁신을 만날 수 있다.
바우하우스 교수였던 칸딘스키의 제자 페터 켈러가 제작한 ‘칸딘스키 컨셉트의 요람’은 추상화의 선구자 칸딘스키 특유의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을 사용한 리듬감이 느껴진다. 등받이를 향해 거꾸로 앉으면 등받이가 책상으로도 쓰일 수 있는 루이지 콜라니의 의자 등 앙증맞으면서도 탁월한 아이디어의 어린이 가구들이 한 코너를 장식해 가족과 함께 가도 좋은 전시다.
부엌가구, 의자, 유리·금속 공예품 등으로 구분된 전시장을 둘러보노라면 현대의 인테리어 디자인이 바우하우스의 자장 안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년 2월 20일까지. 글·사진=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