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부장판사 김복형)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현금을 전달한(사기 방조, 사기미수 방조)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A씨(26)에게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8일 밝혔다.
제대 후 대학을 휴학 중인 A씨는 지난해 11월 12일 인터넷 구직사이트를 통해 이력서를 내고 보름쯤 뒤에 수출전문업체라는 곳에서 ‘출장 직원을 모집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A씨는 업체로부터 ‘지방의 사업자에게 판매한 대금을 정산 받아 현금으로 회사에 송금하라’는 말을 카카오톡을 통해 전달받았다.
당일 수당으로 지급되는 급여는 송금액이 하루 1000만원 미만일 경우 10만원, 1000만원 이상일 경우 판매금액의 1%라고 안내받았다.
이에 A씨는 면접도 없이 채용하고, 수출업체가 지방의 사업자에게 판매금액을 정산받으며 탈세 등을 위해 무통장입금이 아닌 굳이 현금으로 전달받는 점을 수상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A씨는 수출업체를 위해 일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을 뿐 보이스피싱 조직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A씨는 지난해 11월 26일부터 12월 11일까지 ‘대환대출 또는 낮은 금리 대출’ 등을 미끼로 한 보이스피싱에 속은 피해자들이 입금한 현금 1250여만원을 세 차례에 걸쳐 1차 수금책에게 전달받아 조직에 송금했다.
경찰에 체포되기 전까지 A씨는 홍천과 창원, 부산, 청주, 광주, 천안, 대구 등지를 돌며 보이스피싱 조직의 지시를 받아 현금을 송금했고, 일정이 취소되면 되돌아오기도 했다.
1심에서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A씨는 “보이스피싱 범행인 줄 몰랐다”며 사실오인 등을 이유로 들어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휴학 중 여러 아르바이트를 한 A씨의 사정을 종합해볼 때 자신의 행위가 보이스피싱 조직이 피해자들로부터 편취한 돈을 취합하는 과정의 일부임을 미필적으로 인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막연하게 불법적인 일에 가담한다는 인식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기도 어려운 만큼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가 있다”고 판시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