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美대표, “북미협상 실패하면 韓·日서 ‘핵무장론’ 나올 수 있어”

입력 2019-09-08 05:57 수정 2019-09-08 13:39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북·미 비핵화 협상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핵무장론이 제기될 가능성을 거론했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AP뉴시스

대북 실무협상의 미국 측 대표인 비건 대표가 동북아 지역에서 민감한 이슈인 ‘연쇄 핵무장론’을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을 주장하고 나서라도 미국이 용인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비건 대표는 한·일의 핵무장론이라는 초강수를 거론한 이유는 북한을 압박해 북·미 협상을 서둘러 재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 한·일에서 핵무장 주장이 나올 경우 가장 거세게 반발할 중국에게 북한 설득에 더욱 주력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비건 대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조치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로 주한미군에 대한 전략적 재검토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비건 대표는 6일(현지시간) 모교인 미시간대에서 진행된 강연과 대담을 통해 “세계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고수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북한의 WMD와 그 운반시설은 미사일에 대해 “국제적 규범에 대한 도전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들에 대한 위반“이라고 규정했다.

비건 대표는 이어 북한에 북·미 대화를 강하게 요구했다. 그는 “적대 정책을 극복하는 것은 북한과 미국이 협력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북한의 소식을 듣는 대로 북한과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북한에 분명히 전달했다”고 말했다.

비건 대표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부 장관과의 대화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동아시아 지역의 핵무장 우려를 피력했다.

비건 대표는 “키신저 박사는 ‘우리가 북한의 핵무기 제거를 위해 일하고 있으나 이런 노력이 실패하면 이후에는 아시아 지역의 핵확산 도전에 대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아시아의 많은 국가가 핵무기 개발을 위한 과학적 수단과 기술적 능력을 갖고 있다”면서 “일본이나 한국 같은 동맹들은 부분적으로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포함된 확장 억지에 대한 신뢰로 핵무기 프로그램을 그만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건 대표는 그러면서 “하지만 그런 (핵)무기가 그들의 영토에서 단지 단거리 탄도미사일 비행 거리에 있다면 얼마나 오래 이런 확신이 지속되겠느냐”며 “어떤 시점에 한국이나 일본, 다른 아시아 국가 내에서 그들 스스로의 핵 능력을 재고할 필요가 있는지를 묻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비건 대표는 “늘 실패에는 결과가 따른다”면서 “나는 국제사회가 이 일에 실패하면 북한이 아시아에서 마지막 핵보유국이 아닐 것이라는 키신저 박사의 말이 맞을까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비건 대표는 강연 이후 문답에서 “우리는 핵보유국을 더 원치 않는다”면서 “중국도, 러시아도 그렇다”고 설명했다.

비건 대표는 북·미 대화 테이블로 돌아올 경우 북한이 받을 수 있는 선물도 거론했다. 그는 “(북·미) 양측은 전 세계를 향해 미국과 북한이 대결로부터 불가역적 결별을 했다는 것을 선언할 중대한 조치들에 신속하게 합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항구적 평화 체제가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해 종전선언 또는 평화협정 체결 가능성 등을 시사했다.

비건 대표는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상응 조치로서의 주한미군 병력 감축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우리는 그것과는 매우 떨어져 있다”면서 “‘전쟁에 대한 준비태세 유지 및 훈련’에서 ‘지속적인 평화를 향한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역할’로의 전환에는 많은 ‘전략적 재검토’가 포함된다”고 유연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그러나 북한의 WMD 문제에 대한 진전 없이는 어떠한 결실도 이룰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비건 대표는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1년 동안 이러한 목표를 향한 중대한 진전을 이루는 데 전적으로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내년 미 대선을 1년 2개월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성과를 내기 위해 북·미 비핵화 협상에 더욱 전력을 다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