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만에 3연패’ 英존슨, 리더십에 치명타…다음 카드는?

입력 2019-09-05 17:41

영국 하원이 4일(현지시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3개월 추가 연기를 골자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다음달 31일까지 무조건 유럽연합(EU)를 떠나겠다던 보리스 존슨 총리의 호언장담이 무색한 말로 전락했다. 존슨 총리가 하원의 반대파에 맞서 준비했던 조기총선 카드조차 하원에서 부결됐다. 존슨 내각은 이틀에 걸친 24시간 동안 브렉시트 관련 세 차례의 하원 표결에 전패하며 취임 6주만에 리더십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영국 하원의 존슨 총리 반대세력들은 지난 3일 표결을 통해 존슨 내각으로부터 의사일정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이튿날인 이날 더 큰 표차(찬성 327 대 반대 299)로 ‘노딜 브렉시트 방지 법안’(노딜 방지법)을 가결했다. 이 법안은 영국이 EU측과 어떠한 합의도 도출하지 못한 채 EU를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는 존슨 총리에 맞서 브렉시트 시한을 내년 1월 31일로 미루는 내용을 담고 있다. 브렉시트 연기를 수용할 수 없는 존슨 총리가 의회 해산을 위해 다음달 15일 조기총선을 치르는 안을 하원에 발의했지만 이마저도 좌절됐다. 조기총선을 위해서는 가결정족수인 하원의원 3분의 2에 해당하는 434표가 필요했지만 찬성은 298표에 그쳤다.

노딜 방지법이 하원을 넘어 상원마저 통과된다면 존슨 총리는 자신의 최대 공약이었던 ‘다음달 31일 브렉시트 강행’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정치생명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이다. 현지에서는 위기의 존슨 총리가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상원에서 시간 끌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가 앞서 다음 주부터 한 달간 의회를 정회하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오는 9일까지 상원 통과와 여왕 재가 절차를 밟지 못하면 노딜 방지법은 자동 폐기되기 때문이다.

영국 언론은 존슨 총리를 지지하는 보수당 상원의원들이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에 나서는 등의 방식으로 시간을 끌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노딜 방지법의 상원 심의를 앞두고 보수당 브렉시트 강행파는 개별 안건마다 토론과 표결을 거쳐야 하는 수정안 100여개를 발의하며 시간 끌기를 본격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 상원은 심야까지 이어진 토론 끝에 5일 노딜 방지법을 6일까지 처리키로 전격 합의했다. 시간 끌기 전략을 미연에 차단한 것이다. 상원이 6일까지 노딜 방지법을 처리해 하원으로 다시 보내면 하원은 오는 9일 최종 표결을 하게 된다. 법안이 이후 예정대로 여왕의 재가까지 받으면 다음주 의회 정회 전 입법을 마무리할 수 있다.

존슨 총리에게 남은 카드는 이제 조기 총선 정도 뿐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존슨 총리가 오는 9일 조기 총선을 더 강하게 밀어붙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회 해산을 의미하는 조기 총선을 통해 안정적 다수당이 되려는 목적이지만 ‘도박’에 가깝다. 제1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 등 야권이 브렉시트 예정 날인 다음달 31일 전까지 노딜 방지법 입법이 완료돼야 조기 총선에 동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 가결 정족수인 하원의원 2/3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만이 궁지에 몰린 존슨 총리를 위로하며 지지를 표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존슨 총리는 내 친구다. 그는 이기는 방법을 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영국판 트럼프’라고 불리는 등 자신과 유사한 성향을 지닌 자국 중심주의·포퓰리스트 리더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