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병사’가 대대장으로부터 질책을 받은 뒤 유서를 남기고 사망한 사건에 대해 대대장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춘천지법 행정1부(성지호 부장판사)는 강원도 육군 모 부대 A 대대장이 사단장을 상대로 낸 ‘견책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5일 밝혔다.
앞서 A 대대장은 지난해 6월 27일 도움병사인 B 일병을 행정보급관과 함께 대대장실로 불러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을 싫어한다. 조직과 어울리는 법을 배워라. 2주 안에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법과 규정의 잣대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5분간 차렷 자세를 시켰다.
도움병사란 정신적, 신체적, 가정적 문제 등으로 복무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병사를 가리킨다.
B 일병은 3시간여 뒤 소속 부대 강의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활동복 바지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좀 다르더라도 남들처럼 살 수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주변 모든 사람에게 피해만 주면서 살아갈 것이 뻔하다. 이제야 내 주제를 깨달아 미안하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A 대대장은 이 일로 인해 지난해 8월 말 견책 처분을 받았다. 대대장으로서 교육의 필요성은 있었지만 공포감을 주는 발언을 해 B 일병 사망의 원인을 제공했으며, 지휘·감독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게 징계 사유였다.
A 대대장은 징계에 불복해 항고했으나 기각돼 행정소송을 냈다. A 대대장은 재판 과정에서 “폭언이나 욕설, 가혹 행위가 없었고 정당한 교육을 한 것”이라며 “B 일병의 사망과 인과관계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도움병사에 대한 신상 관리 책임 업무를 지휘·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소홀히 한 점이 인정된다”며 “설령 도움병사가 느꼈을 중압감 등을 예상하지 못했더라도 지휘·감독의무 소홀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도움병사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강하게 질책함으로써 해당 병사가 사망에 이르는 불행한 사건이 벌어지게 했다”며 “군인 사회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병영 생활 불안감을 초래한 것으로 징계는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송혜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