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철회를 공식 발표했지만 홍콩 시위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시위를 계속하기로 했다. 반면 홍콩내 친중파들은 람 장관의 발표를 환영해 이번 주말 시위가 홍콩 정국의 또 다른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람 장관이 송환법 공식 철회를 발표했음에도 시위대와 정치권은 람 장관의 양보가 너무 적고, 발표도 이미 늦었다며 반발하고 있다.
홍콩 시위대의 한 단체는 4일 밤 입법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람 장관의 발표는 “썩은 살에 반창고를 붙이는 것과 같다”며 미봉책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시위대가 요구해온 5개 사항을 홍콩 정부가 모두 수용할 때까지 시위를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야당 의원인 클라우디아 모는 “캐리 람은 이처럼 작고 모호한 조치로 위기를 모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고, 우치와이 홍콩 민주당 주석은 “가짜 양보” “시위대를 향한 강경조치의 서막”이라고 의심했다.
친중파 진영과 재계는 송환법 공식 철회를 환영했다.
주홍콩 미국 상공회의소는 “홍콩의 국제적 명성을 되찾는 중요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했다. 친중파 정당인 민주건항협진연맹의 스태리 리 주석은 “이번 양보에도 불구하고 폭력 충돌이 심해진다면 정부는 ‘긴급법’이나 ‘공안조례’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번 주말 시위는 홍콩 정국의 새로운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홍콩 시위대는 오는 7일 홍콩 쇼핑몰 등에서 소비 자제 운동을 펼치고, 홍콩국제공항 주변의 교통을 방해하는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8일에는 주홍콩 미국 총영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기로 했다. 민간인권전선은 오는 15일 주말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송환법 철회에도 홍콩 시위가 계속된다면 중국 본토의 무력개입이 불가피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10월 1일 신중국 건국 70주년 행사를 앞둔 중국은 선전에 무장경찰을 배치해 무력개입을 위협했지만 중고등학생들까지 동맹휴학에 참여하자 결국 송환법 철회로 봉합에 나섰다. 하지만 시위가 계속 이어지면 무력개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3일 중앙당교 간부교육생 대상 연설에서 “우리가 직면한 투쟁은 정치, 경제, 사회, 국방, 홍콩, 대만 문제까지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며 강인한 투쟁 의지를 강조했다.
장리판 정치평론가는 “시 주석이 홍콩, 마카오, 대만을 강조한 것은 이 지역의 미묘한 상황을 부각한 것”이라며 “중국 공산당은 3곳의 문제가 잘못 처리되면 더 큰 전복의 위협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