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의회가 ‘노딜 브렉시트’를 불사하고 오는 10월31일까지 유럽연합(EU)을 탈퇴하겠다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강경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집권 여당인 보수당에서도 ‘반란파’가 대거 등장했다. 노딜 브렉시트에 따른 후폭풍, 총리의 독선적 리더십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영국 하원은 3일(현지시간) 내각이 갖고 있는 의사일정 주도권을 4일 하루만 하원에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고 영국 BBC방송, 가디언 등이 보도했다. 이로써 4일 하원이 노딜 브렉시트를 막기 위해 마련한 ‘EU (탈퇴) 법안’을 처리하면 브렉시트 시한은 내년 1월31일까지 연기될 수 있다.
결의안은 찬성 328표 대 반대 301표로 통과됐는데, 집권 보수당에서만 무려 21개의 이탈표가 나왔다. 존슨 총리가 표결에 앞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을 경우 다음 총선에서 보수당 후보로 출마할 수 없을 것이라고 위협했음에도 대거 반대표가 나왔다. 영국 파이낸션타임스(FT)는 이날 ‘보수당 반란표가 존슨의 브렉시트 전략을 꺾었다’고 전했다.
반란표를 던진 이들로는 하원 최장수 현역 의원으로 재무장관을 지낸 켄 클라크, 필립 해먼드 전 재무장관, 윈스턴 처칠 전 총리의 손자인 니컬러스 윈스턴 솜스 의원 등이 있다. 21명의 의원 경력만 모두 330년에 달한다.
이들이 출당을 각오하고 반란표를 던진 것은 노딜 브렉시트에 따른 후폭풍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영국 정부는 지난 3월 노딜 브렉시트를 대비한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식료품 공급 감소에 따른 가격 상승과 의약품 수급 지연 등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존슨 총리의 독선적 리더십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클라크 전 재무장관은 BBC에 “총리의 ‘광대 같은 성격’이 역대 보수당 정부 중 가장 우익인 내각을 만들었다”고 말했다고 BBC는 전했다.
존슨 총리의 연설 중에 탈당 의사를 밝히고 야당인 자유민주당으로 입당한 필립 리 의원은 “보수당 정부는 무원칙한 방법으로 피해가 막심한 브렉시트를 공격적으로 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수당은 불필요하게 민생을 위험에 빠뜨리고 영국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와 민주주의, 세계에서의 역할을 약화시키고 있다”며 “정치적 조작과 괴롭힘, 거짓말을 사용하는데, 고의적이고 고려된 방법으로 이러한 일들을 자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FT는 “보수당의 반란은 존슨 총리가 브렉시트 협상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하원의원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한 후에 일어났다”며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어떠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보수당은 즉각 반기를 든 의원들에게 출당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보수당 제1원내총무인 마크 스펜서 의원은 이날 당론을 어기고 노딜 브렉시트 방지법 추진 기회를 만들어낸 의원 21명에게 출당 뜻을 전했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