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정명훈이 왕세자 시절의 나루히토(德仁) 일왕에게 한국에 초청하고 싶다는 뜻을 전한 적이 있다고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명예음악감독인 정명훈은 3일자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은 내용을 밝히면서 “내 신조는 첫 번째가 인간, 두 번째가 음악가, 세 번째가 한국인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다”면서 “나루히토 일왕은 인간적으로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지위가 높아지거나 유명해질수록 순수하고 겸손한 인간으로 남기 어렵다. 하지만 나루히토 일왕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정말 좋은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올봄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 당시 도쿄필 홈페이지를 통해 “즉위를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었다.
정명훈은 음악 애호가로 알려진 나루히토 일왕과 ‘음악 친구’로서 오랜 친분을 이어오고 있다. 비올라를 수준급으로 연주하는 나루히토 일왕은 2004년 한·일 우호 특별음악회와 2007년 한·중·일 우호 특별음악회에서 정명훈과 함께 실내악 연주에 나선 바 있다. 정명훈이 2002년 도쿄에서 오페라 ‘나비부인’을 지휘할 때 관람하러 온 나루히토 당시 왕세자로부터 비올라를 연주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협연을 제안하면서 2004년 특별음악회 협연이 이뤄졌다.
정명훈은 “나루히토 일왕을 만난 것 그리고 함께 연주한 것은 나에게 큰 기쁨이다. 앞으로 다시 협연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면서 “나루히토 일왕이 연주하는 비올라는 내가 좋아하는 악기다.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는 바이올린이나 첼로 등 현악기들 사이에서 조화롭게 정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루히토 일왕은 좋은 악기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인터뷰에서 정명훈은 일왕과의 관계 외에 자신의 음악관에 대해 솔직하게 답했다. 그는 “나는 연주를 통해 뭔가 대단한 메시지를 남기려는 음악가는 아니다. 내 사명은 눈앞에 있는 청중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메시지를 남기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은 위대한 작곡가이지 나같은 작품 전달자는 아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내 연주회에 온 것이 계기가 되어 음악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됐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 나는 행복하다”고 피력했다. 그는 또 “살아있는 동안 계속 공부해야 한다. 인간은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현명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단한 노력만이 인생이나 음악에 대해 조금씩 이해를 깊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이번 인터뷰가 실린 산케이신문은 평서 ‘한국 때리기’를 일삼는 극우 성향의 매체로 한국에서 악명높다. 하지만 정명훈에게 최근 악화된 한·일 관계에 대한 질문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명훈이 인터뷰에서 ‘인간’을 가장 중시한다고 여러 차례 반복한 것이나 메시앙의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를 들어 인류애를 강조한 것은 한·일 관계와 관련해 서로에 대한 증오를 없앴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정명훈은 지난 2월 도쿄의과·치과대학부속병원을 방문해 아픈 아이들을 위한 미니콘서트를 열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젊은 음악가를 키우거나 좋은 음악을 널리 소개하는 일은 내게 중요하다. 힘이 닿는한 도움이 되고 싶다. 그런데, 근래 유니세프 국제친선대사를 맡으면서 ‘인간’으로서의 활동에 좀더 무게를 두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친구이자 스승인 메시앙의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는 내게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진정한 기쁨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정답은 ‘진정한 기쁨은 고통을 함께하는 것’이다”면서 “이 답은 매우 기독교적이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희생한 그리스도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베토벤의 작품 역시 인류애를 이야기한다고 설명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