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수건 두 장으로 불길 막은 이 남자의 정체

입력 2019-09-03 16:53 수정 2019-09-03 16:54

여러분이 생각하는 ‘영웅’의 이미지는 어떤가요? 유명 히어로물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번뜩 떠오를 겁니다. 여러 분야에서 국위 선양해 ‘국민 영웅’으로 불리는 인물도 있겠죠. 사실 굳이 생각해내려 하지 않아도 영웅은 늘 우리 곁에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종종 있습니다. 이번 이야기처럼요.

사고는 2일 오후 8시18분쯤 대구 수성구 신매동 한 음식점에서 발생했습니다. 손님이 가득 찬 식당이었는데, 주방에서 불이 난 겁니다. 늘 화재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긴 하지만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모두가 우왕좌왕이었죠.

주방에서 타오르는 불씨를 잡기 위해 등장한 건 홀에서 음식을 먹던 남성 손님 한 명이었습니다. 이 남성은 이날 이 식당에서 일행과 함께 모임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는 주방에서 불이 난 것을 발견하고는 가장 먼저 다른 손님들을 대피시켰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119에 신고해달라고 요청한 뒤 수건에 물을 묻히기 시작했습니다. 차가운 물을 흠뻑 적신 수건 두 장을 든 그는 재빨리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러고는 치솟는 불길을 수건으로 제압했습니다.

그렇게 큰 화재로 이어질 뻔했던 상황은 무사히 무마됐습니다. 위급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움직였던 그 손님은 누구였을까요?

대구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이날 영웅처럼 등장한 남성의 정체는 수성소방서 범물119안전센터에서 근무하는 강성태 소방위였습니다. 그는 쉬는 날이었던 사고 당일 친목 모임에 참석했다가 화재 상황을 맞았고, 침착하게 대처했던 것입니다.

강 소방위는 식당에 소화기가 비치돼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소화기를 주방 시설에 뿌릴 경우 소화 약제로 인해 식당이 정상 영업을 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짧은 시간에 식당 직원들이 해야 할 뒤처리를 떠올린 거지요. 기름 화재의 특성을 잘 알고 있던 그였기에 물을 충분히 적신 수건만으로도 불씨를 단번에 꺼뜨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설명해달라는 말에 “불이 난 것을 본 순간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였다”고 답했습니다.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요. 근무시간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강 소방위와 동료들은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겁니다. 그들이 단 한 순간의 고민 없이 불길 속에 뛰어드는 이유는 뭘까요. 위험에 처한 이들에게 희망과 믿음을 주기 위해서, 아직 살만한 시간을 선물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