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오른팔’로 불리는 왕치산 중국 국가부주석이 홍콩 시위가 격화되는 와중에 홍콩 건너편 광둥성을 방문했다. 왕 부주석은 중국에 큰일이 닥칠때마다 ‘소방수’ 역할을 해왔고 6·4 천안문 사태에도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다. 따라서 그가 미궁에 빠져드는 홍콩 시위에도 ‘해결사’로 나서는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시위 확산에 비상이 걸린 홍콩 경찰은 무차별적인 시위 지도부 검거에 나섰다. 백색테러도 다시 발생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왕 부주석은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 광둥성 자오칭과 광저우, 푸산 등을 방문했다. 그는 역사와 문화유산 조사연구 명목으로 광저우미술학원, 광둥중의약박물관 등을 방문하고 중산대학에서 학자들과 좌담회를 갖기도 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과 푸산에서 열린 FIBA세계농구월드컵 경기도 관람했다.
그러나 그의 광둥성 방문은 홍콩 시위대의 대규모 집회와 중국 정부의 무력 개입설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뤄져 예사롭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왕 부주석이 광둥성 방문에서 홍콩 상황을 논의했는지는 모르지만, 신중국 건국 70주년과 애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왕 부주석은 “신중국 건국후 지난 70년간 이뤄낸 눈부신 업적은 중화민족 5천년 역사의 토양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왕 부주석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A·사스) 사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등 국가의 위기 때마다 ‘소방수’로 나섰고, 시진핑 체제에서는 ‘부패와의 전쟁’으로 정적을 제거하고 권력을 공고히 해준 인물이다. 그는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운동에 대한 강경 진압을 지지한 야오이린 전 상무부총리의 사위다.
앞서 자오커즈 국무위원 겸 공안부장도 지난달 26일 광둥성을 방문해 “외국 세력이 개입한 폭력과 테러, 전복과 침투 활동 등을 예방하고 엄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평론가인 천다오인 상하이정법대 교수는 “왕 부주석은 천안문 민주화 시위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고, 자오커즈는 경찰을 운용하는 총책임자”라며 “그들의 광둥성 방문은 지도부가 최전선에서 정보를 수집해 10월 1일 국경절을 앞두고 시위 진압에 대비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홍콩 경찰이 송환법 반대 시위를 강경 진압하면서 체포된 시위 참가자 수가 1100명을 넘어섰다.
홍콩 경찰은 전날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송환법 시위가 시작된 지난 6월 9일부터 현재까지 불법행위로 체포된 시위 참가자가 1117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시위대의 주요 혐의는 불법집회, 경찰 폭행, 폭동, 상해, 공격용 무기 무단 소지 등이다.
장젠쭝 홍콩 정무사 사장은 “폭력 세력은 홍콩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했으며 공공안전을 무시하고, 국가 권위에 도전했다”며 “이들은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의 마지노선을 침범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는 이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며 “폭동을 진압하고 질서를 회복하는 것은 가장 시급한 임무”라고 강조했다.
홍콩 경찰은 학생들의 동맹휴학과 노동계 총파업으로 사태가 확산되자 시위 지도부 등 민주 인사에 대해 무더기 검거 작전을 벌였다. 백색테러도 발생했다.
경찰은 공항을 통해 입경하는 이반 램 데모시스토당 주석을 체포했다. 그는 지난 6월 21일 경찰본부 포위 시위 등 불법 집회를 선동하고 참여한 혐의다. 앞서 데모시스토당 비서장인 조슈아 웡, 당원인 아그네스 차우도 지난달 30일 체포된 바 있다. 데모시스토당 소속의 정자랑은 전날 밤 귀가하다 3명의 괴한에게 집단 구타를 당해 눈 주위 등을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은 또 최근 위안랑 지역에서 발생한 ‘백색테러’ 규탄 집회를 주도한 마이클 모도 이날 오전 검거했다. 홍콩침례대학 팡중셴 학생회장은 다른 사람이 분실한 지갑을 가지고 있었다며 절도 혐의로 체포됐다. 홍콩침례대학 학생회는 이에 대해 “이 지갑은 어제 동맹휴학 집회 후에 분실된 물건으로 지갑 주인까지 찾았는데, 경찰이 터무니없는 혐의를 뒤집어씌웠다”고 비난했다.
홍콩 경찰이 대학 동맹휴학을 주도하는 학생회장과 데모시스토당 지도부를 집중 검거하고 ‘백색테러’까지 발생한 것은 전날부터 본격화한 총파업(罷工), 동맹휴학(罷課), ‘불매운동’ 철시(罷市) 등 이른바 3파(罷) 투쟁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