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행정장관 녹취유출 “송환법 추진 후회… 사과하고 싶다”

입력 2019-09-03 14:05
기자회견 중 고개숙인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지난달 20일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 사태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을 추진해 혼란을 초래한 것을 후회하며, 가능하다면 행정수반 자리를 그만두고 싶다고 토로한 대화 내용이 유출됐다. 홍콩 시위대의 사퇴요구 등을 거부하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로이터통신은 2일(현지시간) 람 행정장관이 지난주 홍콩에서 기업가들과 만나 약 30분간 비공개 회동을 가졌고, 이중 24분 분량의 대화 녹취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람 행정장관은 이 자리에서 “행정수반으로서 홍콩에 이런 엄청난 혼란을 초래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며 “만약 내에 선택권이 있다면 처음으로 할 일은 깊은 사과를 하고 (직을) 그만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송환법 추진에 대해서는 “결론적으로 매우 어리석었다. 중국 본토에 대한 홍콩인의 두려움과 분노의 감정이 이렇게 큰지 알지 못했다”고 후회했다.

실제 람 장관은 최근 송환법 철회를 포함한 홍콩 분쟁을 완전히 해결하겠다고 중국 정부에 제안했지만 거부당했다는 말을 복수의 관계자가 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람 행정장관은 중국과 미국이 무역전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홍콩 사태가 중국 국가안보와 주권문제로 번지면서 자신이 혼란수습을 위해 할 수 있는 정치적 선택권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은 자기연민에 빠져 있을 시간은 아니다”라면서도 “최일선의 경찰관들이 받는 압박을 줄이지 못하고, 정부에, 특히 나에게 화가 난 다수의 평화로운 시위대를 진정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해결책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자책했다.

로이터는 또 행정장관의 목소리톤은 목이 메는 듯했다며 그동안 시위대의 폭력에 단호한 대처 방침을 밝혀온 강철 같은(steely) 대중적 이미지와 불일치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홍콩 무력개입 계획은 전혀 없다고 못 박았다. 람 행정장관은 “중국은 국제적인 체면을 중시한다”며 “홍콩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투입할 때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중국은 홍콩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장기전을 하려 할 것”이라며 “홍콩은 그로 인해 경제적인 고통을 겪을지라도 그럴 것”이라고 전망했다.

람 행정장관은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사퇴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홍콩 현지언론 등은 3일 람 행정장관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사적 녹음기록이 유출된 데 유감을 표하며 “지난 6월부터 지금까지 중앙정부에 사임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법에 따라 폭력 사태를 중단시킬 것”이라며 “현행법에 (폭력 시위 처벌과) 관련된 조항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중이고 폭력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 한다”고 강조하며 계속해서 직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