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한 아파트 주민들이 실거래가보다 2억원 이상 높은 아파트 매매 가격 하한선을 정한 뒤 ‘담합’을 공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대전 서구 둔산동 한 아파트 곳곳에는 최근 ‘우리 아파트 가격 저평가에 대한 입주민 협조’라는 제목의 공고문이 붙었다. 3일 이 아파트 주민들에 따르면 A4 용지 한 장 분량의 이 글은 입주자대표회의가 작성해 배포했다.
여기에는 “우리 아파트가 입주 후 10여년간 둔산지역 32평형 중 최고가를 자랑했으나 현재 주변 아파트보다도 저평가돼 있다”며 “지난 4월 (같은 평수의 인근 다른 아파트) 거래 등을 고려할 때 우리 아파트 가격 또한 이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고 쓰였다.
이어 아파트 가격 결정 요인으로 녹지 공간 및 체육시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서관 및 금융기관, 학교 등 교육시설 인접 등을 꼽았다. 인근 다른 아파트와 비교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통 편의성, 시장 접근성, 노후 시설 개선 등을 언급하며 매매 가격을 높여야 하는 이유를 강조했다.
공고문 마지막에는 매매 가격 하한선을 제시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23평형의 경우 3억4000만원, 32평형의 경우 4억8000만원 이하로는 매매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파트가 둔산지역 어느 아파트보다 비교우위에 있음을 적극 홍보해달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들이 제시한 가격 하한선이 실거래가보다 2억원 이상 높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조회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지난달까지 이 아파트 32평형 거래가는 2억2800만원~3억3500만원이다. 23평형 역시 1억7200만원~2억1500만원에 팔렸다.
아파트 입주민들끼리 매매 가격을 담합하는 것은 시장에서는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그러나 보통 입주민만 가입한 온라인 카페나 단체 메신저를 이용해 입을 모으는 게 일반적이다. 이번 사례처럼 공개적으로 사안을 게시하고 담합을 조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 아파트 한 입주자대표는 “우리 아파트 가격이 인근에서 가장 높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주변 아파트보다 낮게 거래되고 있다”며 “주변 인프라 등을 고려해 이 정도 가격은 받아야 한다는 주민 공감대를 거쳐 공고문을 게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