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송민근(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북극해 인근 덴마크령인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밝혀 국제적 관심을 모은 일이 있다. 그린란드 외교부 및 덴마크가 “그린란드는 판매대상이 아니다”라며 즉각 거부 의견을 밝혀 매입은 무산됐다. 하지만 많은 이가 “대체 왜”하는 호기심을 가졌을 것이다.
북극이라는 단어를 보면 보통 겨울, 빙하, 북극곰, 북극여우 등을 연상한다. 하얀 빙하 위에서 북극곰이 콜라를 마시는 광고가 인기를 끈 덕에 익숙한 콜라 브랜드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오랫동안 북극은 그런 모습이었다.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왔다. 주로 과학 연구의 대상이지 개발의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해빙이 진행되면서 최근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북극이 자원의 보고이자, 새로운 국제 무역항로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트럼프뿐 아니라 세계 각국 정부가 북극에 눈길을 주면서, 최근 북극은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붙는 각축장이 되고 있다. 극지연구소 등을 통해 오랫동안 북극을 연구해온 우리나라도 이런 변화에 발맞춰나가는 게 필요하다. 현재의 노력과 준비가 10~20년 후 북극 지역에서 우리나라의 역할과 지위를 좌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극의 역설과 콜드러시
지구 온난화는 전 세계적으로 기후와 생태계 변화 등을 가져왔다. 이는 분명 심각한 위기로 간주된다. 하지만 빙하가 녹으면서 북극 지역 자원과 북극항로라는 새로운 경로 개발의 기회도 생겼다. 이렇듯 위기와 편익이 함께 나타나는 특징이 최근 ‘북극의 역설(Arctic Paradox)’로 표현되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북극 해빙 면적이 넓어져서 여름에는 쇄빙선의 도움 없이 항해가 가능할 정도다. 또한, 2030년이 되면 여름뿐 아니라 연중 자유 항해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되고 있다.
그동안 북극 지역에서는 시추장비, 유전시설 등이 빙하 압력을 견디지 못해 개발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빙하가 녹으면서 천연가스, 석유 등 자원 개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세계 원유의 13%, 천연가스의 30%가량이 북극 지역에 매장되어 있을 것이며, 다른 자원을 제외하고 원유와 천연가스만 추산해도 자원 가치가 약 172조 달러(한화 약 20경)에 달한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북극해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북극항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 사이 주요 항로는 수에즈 운하 경로이다. 하지만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수에즈 운하 경로를 이용할 때보다 이동 거리와 항해일수를 크게 단축할 수 있다. 특히 북극항로가 상용화되면 현재 국제 해운의 핵심 항로에 있는 홍콩, 싱가포르 등이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대신 북극항로의 주요 경로인 한반도 및 러시아의 항만이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커질 수 있다. 우리나라가 북극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북극에 매장된 막대한 자원과 새로운 국제 해운 항로의 가능성을 보고 많은 나라가 북극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19세기 미국에서 황금을 찾아 서부로 사람들이 몰렸던 ‘골드러시(Gold Rush)’와 유사하다고 하여, 최근 ‘콜드러시(Cold Rush)’라는 표현까지 생겼다. 이제 북극 개발은 국가 간 이권을 둘러싼 세계 경제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남극과 북극의 차이
지구의 두 극지 가운데 남극은 거대한 육지다. 반면 북극은 북미 및 유라시아 대륙으로 둘러싸인 바다에 위치한다. 육지가 바다보다 온도에 따른 생태 변화가 크기 때문에 겨울철 남극이 북극보다 더욱 춥다. 이에 따라 남극에는 원주민이 없다. 또한, 1959년 체결된 남극조약에 따라 2048년까지 남극에서는 자원 개발, 영유권 분쟁 등이 금지되어 있다. 현재 남극은 한 마디로 ‘주인 없는 땅’이라고 볼 수 있다.
북극은 다르다. 북극에는 남극처럼 국제조약이 없다. UN 해양법 규정과 북극이사회 등 국제협의체에 의해 관리되는 지역이다. 또한, 북극해의 약 82% 이상은 러시아, 미국, 노르웨이, 덴마크 등 연안국의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포함되어 있다. 많은 지역에서 국가 간 영유권 마찰이 진행 중이고 자원 및 항만 개발, 항로 이용 등과 연관되어 연안국뿐 아니라 협력 국가에 이르기까지 국가 간 경쟁이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 일대일로의 북극진출
북극 지역을 둘러싼 많은 국가의 경쟁 및 변화 국면에서 최근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중국 일대일로의 북극 진출이다. 중국은 2013년 일대일로 구상을 제시한 이후 사업 범위를 지속해서 확대했고, 2017년 북극항로를 일대일로 경로에 포함했다. 2017년 7월 중국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빙상 실크로드(Polar Silk Road)’ 개념을 제시했으며, 2018년 1월 ‘중국의 북극정책’ 백서 발간을 통해 빙상 실크로드를 다시 한 번 공식화했다. 중국은 북극 문제의 이해 당사자이며, 지리적으로 북극권에 가깝다는 의미로 근북극국(Near-Arctic State, 近北极国家)’이라는 표현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중국과 북극은 약 3,000km가 떨어져 있다. 중국이 유럽과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 일대일로를 건설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3,000km가 중국 관점에서는 가까운 거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객관적 시각으로 보면 근북극국이라는 표현은 다소 어색한 것도 사실이다.
중국은 상호협력, 윈윈, 지속가능성이라는 일대일로의 기본 원칙과 동일하게 ‘북극 일대일로’를 모든 국가와 함께 구축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2019년 6월 중국 시진핑 주석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 간 새 시대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 발전에 관한 연합성명>에 서명했다. 이 성명은 북극의 지속 가능한 발전협력에 관한 사항과 북극항로의 개발 및 이용, 자원개발, 관광, 생태환경 등 많은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지금 중국이 무엇보다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북극을 경유하는 해운 항로 개척으로 보인다. 일대일로의 북극 진출에 대하여 러시아뿐 아니라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도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중국이 제시한 빙상 실크로드 및 북극 경제회랑 건설이 유럽과 동아시아의 연계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중국 견제와 북극개발 진행
중국의 북극 진출에 대하여 미국은 강하게 대응하고 있다. 미국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러 양국이 북극 지역에서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며, 중국의 북극개발 참여가 자원약탈, 환경파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밝혔다. 또 중국이 북극해를 남중국해처럼 군사화하려 한다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미국은 최근 북극 지역에서의 영향력 강화 방침을 밝힌 상태다. 2019년 4월 미국은 신북극전략(United States Coast Guard Arctic Strategic Outlook)을 공표했고, 그 내용에서 기후, 환경 등에 관한 내용을 모두 완곡한 표현으로 바꾸었다. 2017년 8월 미국은 파리기후변화협정(Paris Agreement, 2015)을 탈퇴했으며, 2019년 5월 북극이사회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자원 및 북극항로 개발에 우려를 나타내고, 기후변화 논의 등이 포함된 최종 협정문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는 1996년 북극이사회가 발족한 이후 대표단이 선언문을 채택하지 않은 최초의 일이다.
올해 8월 미국이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밝힌 것 또한 미국이 북극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되고 있다. 동시에 중국의 북극진출 추진에 대한 견제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북극항로와 유라시아 협력
한편 북극항로가 일대일로에 포함되면서 한국은 일대일로의 경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과거 일대일로의 6대 경제회랑이 발표되었을 당시, 많은 국내 기관에서 한국이 일대일로에서 배제되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북극항로 발표 이후 중국 언론 및 연구보고서 다수에 실린 경로지도에 한국이 포함되기 시작했다. 또한, 일대일로의 또 다른 핵심경로인 중몽러 경제회랑(CMREC) 등은 한반도를 통해 북극항로와 직접 연결될 수 있다. 일대일로와 유라시아 협력 개발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강점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유라시아 인프라 연계개발에 관한 관심은 철도에 많이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유라시아 대륙에 육상으로 연결되려면 북한을 거쳐야 하고, 북한은 물류 인프라에서 화물의 90%, 여객의 60%가 철도 의존성을 가진 철도 중심 국가다. 현실적으로 철도 개발이 매우 중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한반도와 중국, 러시아가 접경을 이루는 유라시아 동북지역은 도시 규모가 크지 않고, 인구와 물동량이 부족하다. 이에 따라 물류 인프라가 매우 미흡하다. 철도 인프라 개발은 연선(沿線) 지역 발전을 견인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철도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려면 물동량이 확보되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북극항로와 연계된 유라시아 동북지역의 항만 개발은 역내 물동량 확보에 매우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현재 러시아와 슬라비얀카항 등 극동항만 공동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한-러가 추진하는 항만개발은 북극항로를 포함한 중국 일대일로 정책과 긴밀한 협력이 가능하다. 유라시아 동북지역에 대한 한-중-러 공동 개발은 한국의 신북방정책 뿐 아니라 러시아의 북극항로 개발과 자원수출, 중국의 개발계획에 모두 기여하는 방향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한미 군사훈련, 북한 무력시위 등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긴장이 교차하는 환경에서 북한과의 경제협력 혹은 북한지역에 대한 직접적인 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한 면이 있다. 주변 국가의 협력을 이끌기에도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유라시아 동북지역 항만 개발은 북한과 직접 협력 없이도 진행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북핵 문제 해결 이후의 역내 협력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편 북한은 경제개발 10개년 계획에서 1,0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유치 계획을 추진하는 등 적극적인 개혁, 개방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유라시아 동북지역에서 한-중-러의 긴밀한 협력 개발은 북한이 북핵 이슈 해결을 위하여 더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게 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향후 북핵 이슈가 해결되는 시점에서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의 해상, 육상 개발과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사전 준비, 사업 환경 조성의 의미도 갖게 될 것이다.
북극에 관한 관심과 함께 북극 시대를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할 시점
서두에 언급했듯 북극은 오랫동안 과학 연구의 대상이지 개발의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북극 항로, 자원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북극 개발이 점차 본격화되고 있다. 한국은 2002년 북극과학기지를 설립했고, 2009년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건조하여 2010년 처음으로 북극에 출항했다. 우리나라 극지 전문연구기관인 극지연구소 등은 극지 환경변화, 대기, 해양생물자원, 지질환경 등의 연구 활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2013년 5월 중국, 일본 등과 함께 북극 이사회 정식 옵서버(Permanent Observer) 자격을 취득하면서 한국은 북극 연구 및 개발의 제3자가 아닌 공식적 참여자로 지위가 변경되었다. 우리 정부는 북극해정책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북극정책 시행계획을 주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단, 정부는 그동안 북극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환경보전, 자원개발 등에 중점을 뒀다. 앞으로는 이에 병행해 유라시아 지역의 국제 협력, 지속 가능한 북극 지역 개발 방안 등을 한층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북극항로가 상용화되면 주요 경로에 포함되는 한반도 및 러시아의 항만이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우리나라가 국제 해운물류의 핵심지역으로 부상하고, 유라시아의 다자간 개발협력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이런 미래를 개척하려면 지금 치밀한 노력과 준비가 필요하다. 북극은 혹독한 자연환경 탓에 일반인의 접근이 어렵고 이에 따라 아직 대중적 관심이 부족하다. 북극에 대한 많은 관심과 북극 시대에 대한 적극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