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 제도를 바꾸라는 문재인 대통령 지시에 교육부는 당혹스런 표정이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전반적 개선’의 수준과 폭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2일 “대통령 동남아 순방을 수행 중인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귀국한 이후인 4일부터 대입 개편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 부총리가 문 대통령의 ‘진의’를 파악해 오길 기대하는 눈치다. 교육계에선 2년여 진통 끝에 나온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의 큰 틀을 흔들기는 어려울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①정시 확대는 쉽지 않은 옵션
문 대통령은 “입시제도가 공평하지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며 “공정의 가치는 특히 교육분야에서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공정이란 가치에 방점을 찍으란 요구로 읽힌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영향력 강화, 즉 정시 확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수능 점수로 뽑는 정시가 공정이란 가치에 부합할 수 있다. 그러나 ‘기회 균등’이란 측면에선 의문 부호가 찍힌다. 서울대가 2018학년도 지원자 전체의 입시 데이터를 분석한 ‘서울대학교 정시모집 확대(안) 검토 결과’ 보고서를 보면, 정시가 늘어나면 강남 지역 출신 서울대 합격생이 큰 폭으로 늘어난다(국민일보 2018년 5월 11일자 1면 참조).
정시 비율을 27%에서 50%로 올릴 경우 강남 주요 고교인 세화고 중동고 휘문고 합격생이 배로 늘었다. 이들 학교는 당시 정시 일반전형에서 54명의 합격생을 배출했는데 정시 비율이 50%로 늘어나면 101명이 합격했을 것으로 분석됐다. 입시는 누군가 붙으면 누군가는 떨어지는 ‘제로섬 게임’이다. 정시 확대는 비강남권 수험생의 기회를 빼앗을 수 있다.
수능은 사교육 영향도 많이 받는다. 최상위권 변별력을 위해 출제하는 이른바 ‘킬러 문항’은 고교 교육과정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지난해 수능 ‘국어 31번’이 대표적이다. 일선 교사조차 풀지 못하는 문제들이 실질적인 변별력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 사교육 접근성이 높은 강남 지역 학생에게 유리하다.
정시 확대는 문재인정부 대표 교육공약인 고교학점제를 껍데기로 만들 수 있다. 지난해 교육부는 ‘정시 30%룰’(모든 대학이 정시로 30% 이상 선발)을 만들었다. 수시 이월 인원까지 포함하면 정시 비율은 35% 안팎으로 예상된다. 이 비율만으로도 고교학점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만일 50% 수준으로 정시 비중이 확대되면 고교 정규 교육과정에서 학점 따는 학생이나 입시 기관에서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과 차이가 사라진다.
②수시 공정성 논란 극복 가능할까
수시는 학생부교과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구분된다. 학생부교과는 고교 내신성적을 본다. 학종은 내신 성적을 비롯해 전반적인 학교생활과 인성, 적성, 발전 가능성 등을 종합 평가한다.
수시가 고쳐 쓸 수 있는 제도인지가 핵심이다. 교육부는 문제가 터질 때마다 제도를 보완해 왔다. 사교육 혹은 부유층이 수시의 틈새를 찾아내 활용하고 교육부가 땜질하는 방식이다. 조 후보자 딸 같은 논문이 대표적이다. 교수 자녀 논문 품앗이 의혹이 일자 교육부는 2014년부터 논문 실적을 활용하지 못하게 막았다. 출판, 특허같은 스펙 역시 발 빠른 학부모 학생이 활용하고 교육부가 금지했다.
지난해 대입 개편안에선 수상경력은 학기당 1개, 자율동아리 학년당 1개로 제한했다. 소논문 활동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수상경력이나 자율동아리 활동 개수를 제한하더라도 불공정 문제는 극복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아버지 교사가 두 딸을 위해 정기고사 문제를 유출한 ‘숙명여고 사태’로 수시 전반의 공정성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학교 보안을 강화하고 상피제를 도입하는 등 미봉책으로 덮었다.
근본적으로 학생부교과는 출제자(교사)와 학생·학부모가 같은 공간에 있기 때문에 부정 요소가 개입할 수 있다. 학종은 평가자 주관이 개입하는 정성평가이므로 집안 배경이나 출신학교에 따른 차별 가능성이 상존한다. 블라인드 서류·면접 제도가 도입됐지만 대학과 학부모·학생이 ‘짬짜미’한다면 빠져나갈 방법은 얼마든 있다. 그래서 학종 비판론자들은 “대학, 교사, 학생, 학부모의 신뢰 기반이 취약한 우리나라에선 시기상조인 제도”라고 말한다.
③대학 서열화 먼저 완화돼야
사실 문재인정부가 바꿀 수 있는 입시 제도는 많지 않다. 당장 대입 개편 논의에 착수하더라도 ‘대입 4년 예고제’에 따라 주요 사항은 2024학년도에나 적용할 수 있다. 만약 정시 30%룰을 강화해 정시 비중을 높이도록 주요 대학들에 압박을 가하더라도 미세조정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문재인교육부는 2025년 고교학점제를 전면 도입할 예정이다. 어차피 고교학점제용 대입 개편안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조 후보자 여파로 큰 폭의 변화를 시도한다면 학생 학부모들이 피로감을 호소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수상경력이나 자율동아리 등을 대입에서 반영하지 않고 자기소개서를 폐지하는 방안 등이 검토될 수 있다. 지난해 교육부는 수상경력과 자율동아리를 아예 학생부에 쓰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었지만 공론화 과정에서 활동 개수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한발 물러선 바 있다.
장기적으로는 대학 서열화를 해소하는 방안이 검토될 전망이다. 대학 간판이 좋은 직장으로 연결되는 상황에선 어떤 대입 제도를 갖다 놔도 ‘백약이 무효’라는 문제 인식이 깔려 있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예를 들어 진보 교육계 일각에서는 대학입학 추첨제나 입학보장제 등 파격적인 방안을 주장한다. 추첨제는 수능과 내신에서 일정 수준이 되는 학생을 더 이상 변별하지 말고 추첨하는 방식이다. 입학보장제는 대학들이 네트워크를 만들고 일정 수준의 수능과 내신 등급이면 입학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는 명문대와 학계의 강력한 반발이 불가피하다. 문재인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대학 서열화 해소를 위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공약을 내놨지만 사실상 포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