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전 남편 살인 사건’ 피고인 고유정(36)이 두 번째 재판에서도 범행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렸다. 사건 발생 100일을 넘겼지만 잘못을 뉘우치지도, 피해자와 유족들을 향한 사과를 하지도 않았다.
제주지방법원 형사2부(부장판사 정봉기)는 2일 오후 2시 201호 법정에서 고유정에 대한 2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고유정은 긴 머리를 풀어헤친 채 연녹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섰다.
이날 재판은 우발적 범행이라는 고유정 측과 계획범죄를 주장하는 검찰의 치열한 대립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앞서 지난달 12일 있었던 첫 공판이 고유정 측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마무리된 만큼 검찰이 어떤 근거를 제시할지 관심이 쏠렸었다.
최대 쟁점으로 꼽혔던 ‘졸피뎀’ 사용 여부에 대한 입장은 첨예하게 엇갈렸다. 검찰은 고유정이 전 남편 강모(36)씨의 정신을 잃게 하려는 목적으로 졸피뎀을 사용한 것으로 봤다. 고유정이 범행 전 인터넷을 통해 살해 도구와 방법을 검색하고 졸피뎀을 처방받은 사실 등을 근거로 들었다. 또 범행 현장에 있던 이불에 묻은 강씨의 혈흔에서 졸피뎀 성분이 검출됐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로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고유정 측은 이런 검찰의 주장이 상식에 맞지 않는다며 정면 반박했다. 고유정 측 변호인은 “피고인 차량에서 나온 이불과 담요에서 혈흔이 나왔고 거기에서 졸피뎀이 검출됐다고 검찰이 주장하지만, 담요에서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혈흔이 모두 나왔다”며 “따라서 졸피뎀이 피해자 혈흔에서 나온 것인지 피고인 혈흔에서 나온 것인지 특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졸피뎀을 먹으면 보통 30분 이내에 쓰려져 잠들게 돼 있다. (피해자가 반항했다는) 검찰 측 주장은 상식에서 벗어난다”며 “졸피뎀 제조사는 약이 몸 안에 녹아들었을 때 언제쯤 심신상실 상태에 이르는지 여부를 조사한 데이터를 갖고 있다”고 했다.
이날 고유정 측은 현 남편 홍모(37)씨 전처의 가족을 증인으로 신청하기도 했다. 홍씨의 경찰 진술 내용의 신빙성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고유정 변호인은 “피고인이 현 남편으로부터 수시로 폭행을 당한 사실이 있어 현재 고소한 상태”라며 “현 남편은 피고인에 대한 거짓 진술로 좋지 않은 여론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증인 신청 필요성에 대해 검토한 뒤 다음 기일에서 증인 채택 여부를 가리겠다고 밝혔다.
법정을 가득 채워 재판을 지켜본 방청객들은 고유정 측 주장이 이어질 때마다 탄식을 내뱉었다. 야유를 내보내며 강한 분노를 드러낸 시민도 있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