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온종합병원, 암 투병 사할린 동포 할머니에게 온정

입력 2019-09-02 15:49

부산 온종합병원이 러시아 사할린에서 부산 기장군 정관으로 영주 귀국해 살고 있는 70대 사할린 동포 할머니에게 무료 암 치료를 해줘 추석을 앞두고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다.

유방암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이 할머니는 앞으로도 3회 정도 입원 치료를 더 받아야 하는데 온종합병원은 이 진료비 전액을 부담하기로 했다고 2일 밝혔다.

부산시 사할린영주귀국자회 정문자 할머니(73)는 부산 정관으로의 영주 귀국 전인 지난 2005년 러시아 사할린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국가 중심의 의료체계 상 할머니는 수술 신청을 해놓고 막연히 날짜를 기다려야 했다.

거주지인 사할린은 물론 인근 블라디보스토크조차 의료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해 모스크바 지역 의료기관으로 신청했고, 2012년에서야 비로소 수술 받았다.

그 사이에 남편 김홍식(75)씨와 함께 부산 정관으로 영주 귀국한 정 할머니는 집과 가까운 기장군 동남권원자력병원과 금정구 침례병원 등에서 항암치료를 받아왔다.

조국에서 순조롭던 정 할머니의 암 투병이 뜻밖에 침례병원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으면서 암초에 부딪혔다.

근처 대학병원 등에서 추가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었으나 부부가 생계 곤란한 생활보호대상자여서 어려웠다.

정 할머니 부부는 정부와 지자체에서 주는 보조금 70만원으로 생활하고 있었던 거다. 정 할머니의 유방암은 재발했다. 치료를 걱정하던 정 할머니는 자신이 소속된 부산시 사할린 영주귀국자회로부터 지난 4월말 부산 온종합병원과 진료협약을 맺었고, 이곳에서 자신의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희소식을 들었다.

온종합병원 암병원에서 2주 간 입원 치료한 정 할머니는 현재 유방암이 재발해 계속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온종합병원 암병원 주영돈 부원장(혈액종양내과)은 “그간 지속적으로 치료받지 못해 재발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 구제 항암 화학요법으로 치료하고 있고, 앞으로 2~3주기 치료 후 반응을 평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온종합병원은 정 할머니 부부의 기막힌 사연을 전해 듣고 앞으로의 치료에도 적극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 거다.

부부는 모두 선친이 일제 때 강제징용과 강제이주 피해를 당한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었다.

대구가 고향인 정 할머니 선친은 1938년 19세 나이에 강제징용으로 일본을 거쳐 사할린으로 강제 이주했다.

시아버지는 경북 경산 출신으로 선친과 같은 해인 1938년 일가족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다.

이들 가족은 규슈에서, 다시 사할린으로 강제로 끌려 다녔다. 지하 수백 미터 탄광 갱도 속에서 낮밤 없이 일하면서, 말도 통하지 않는 러시아 땅에서 혹독한 삶을 살아야가야 했다.

해방을 맞아 한반도가 기쁨에 들떠 있을 동안에도 강제이주의 원인을 제공했던 일본정부는 물론 조국마저 그들의 귀환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할린과 규슈 쪽에 뿔뿔이 흩어져 살던 시아버지 가족 중 규슈 가족들이 사할린으로 합류하려고 가던 중 홋카이도에 이르렀을 때 ‘소련군이 한국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다’는 소문을 듣고 포기한 채 한국으로 귀환해서 이산가족으로 살아왔다는 거다.

정 할머니는 “온종합병원의 배려 덕에 치료를 받을 수 있어 다시 삶에 희망을 가져보려 한다”며 “정책상 함께 조국 땅에서 살지 못하고 여전히 사할린에 떨어져 사는 딸에게 엄마 치료 소식을 전해줬더니 좋아했다”고 병원 측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부산 기장군 정관읍에는 2008년 영주 귀국한 사할린 동포 60세대 모두 120명이 살고 있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