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겼는데 웃기기까지 하다면. 배우 차승원(49)의 코미디가 독보적인 이유다. 의외인가 싶다가도 꾸밈없는 소탈함에 훌렁 빠져들고 만다. 그 반전 매력이란 쉽사리 범접하기 힘든 것일 테다.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볼까. 그 시절의 대세는 뭐니 뭐니 해도 코미디였다. 당시 한국 코미디 영화의 부흥기를 이끈 주인공이 다름 아닌 차승원이다. ‘신라의 달밤’(2001) ‘라이터를 켜라’(2002) ‘광복절 특사’(2002) ‘선생 김봉두’(2003) 등 작품들을 연달아 히트시켰으니.
차승원이 반가운 그 모습으로 돌아왔다. 오는 11일 개봉하는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감독 이계벽)를 통해서다. 본격 코미디 연기는 ‘이장과 군수’(2007) 이후 12년 만이다. 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그동안 코미디 작품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코미디 영화를 찍을 땐 늘 현장이 즐거워요. 작품이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에 관계없이 촬영하는 동안은 마냥 행복하죠. 저는 그런 기억들이 너무 좋아요. 코미디 영화를 다시 하고 싶었던 건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어요.”
영화에서 차승원은 예기치 않은 사고로 정신지체 장애를 얻게 된 전직 소방관 철수 역을 맡았다. 동생 내외(박해준 전혜빈)와 함께 부모에게 물려받은 칼국수 식당을 운영하며 살아가던 철수는 골수이식이 필요한 딸(엄채영)을 만나 본능적인 부성을 느끼게 된다.
장르가 코미디이다 보니 웃겨야 하는데, 정신지체 장애인이라는 설정 탓에 조심스러운 면이 많았다.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를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관련 다큐멘터리나 유튜브 영상을 참고해가면서 인물을 희화화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그는 “코미디 영화를 많이 해봤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더 웃기겠다’는 감이 오는데, 최대한 과도한 설정을 없애고 적정한 수준으로 표현했다”면서 “전반부에 코미디를 더 넣었으면 선을 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후반부에도 신파적 설정을 피하려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경쾌한 흐름의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는 부녀의 정이 싹트며 감정의 농도가 짙어진다. 특히 대구 지하철 참사가 극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등장하면서 무게감은 한층 더해진다. 그는 “마블 히어로처럼, 자신을 희생해 사회 곳곳을 지켜주는 소방관들을 향한 헌사가 담겼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영관을 나설 때 ‘착한 영화를 한 편 봤다’는 따뜻함이 밀려든다. 이런 작품에 끌려 출연까지 하게 된 건 내적 변화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고. “나이 쉰이 되니까 확실히 변하더라고요. 예전엔 ‘나만 잘 되면 돼’라는 마인드였다면 이젠 모두의 행복을 바라죠. 점점 편안해져요.”
차승원은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30대에 올라가다 40대에 깨작거리다 50에는 답보 상태”라고 평가했다. 그는 “답보 상태라는 건 정체돼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난 지금이 너무 좋다”고 부연했다.
“점점 나다워지는 것 같아요. 이젠 나를 꾸미지 않아도, 장막을 치지 않아도 괜찮거든요. 이 상태가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