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옆에서 극우 방해 집회

입력 2019-09-02 06:00
일본 도쿄 스미다 요코아미초공원에서 1일 진행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피해자 추도식의 일환으로 진혼무가 추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도쿄에서 1일 1923년 간토대지진 96주년을 맞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이 열렸다.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 공원 내 위령당에서는 매년 1일 간토대지진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집회가 열린다. 그리고 공원내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앞에서 일조(日朝)협회와 도쿄도합회 등 일본 시민단체 주도의 추도식이 별도로 열린다. 간토대지진 50여년 만인 1973년 학살된 조선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비가 세워지면서부터다. 이날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에는 400여명이 참석했다.

추도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은 메시지를 보내 희생자들을 추도했다. 1993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과를 포함한 ‘고노 담화’를 발표한 고노 전 장관은 “간토대지진 당시 유언비어에 의해 목숨을 빼앗긴 한국, 조선의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애도의 뜻을 표한다”면서 “이런 역사를 기록해 전달하면서 민족 차별 없이 서로를 존중하며 돕는 사회를 만들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1923년 9월 1일 도쿄 등 간토지방에서는 규모 7.9의 대형 지진인 간토대지진이 발생했다. 당시 10만5천여명이 희생될 정도로 피해가 컸다. 조선인의 피해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방화한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자경단, 경찰, 군인 등이 재일 조선인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한데서 비롯됐다. 당시 독립신문의 기록에 따르면 이렇게 학살된 조선인의 수는 6661명에 달한다.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당한 조선인들의 시신. 독립기념관 제공=연합뉴스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해 일본에서 그동안 희생자 수를 놓고 입장 차는 있었지만 역사적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역사 수정주의’가 강해지면서 학살 자체를 부정하려는 움직임까지 나오고 있다.

과거 도쿄지사들은 시민단체의 요청에 따라 재직 중 매년 9월 1일 열리는 간토대학살 조선인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냈다. 하지만 고이케 유리코 현 지사는 2017년부터 올해까지 한번도 추도문을 보내지 않았다. 조선인 희생자 수의 근거가 희박하다는 우익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대지진 희생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법요식에서 애도의 뜻을 표명했기 때문에 따로 필요없다는 논리다.

한편 이날 추도식장에서 불과 4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우익 40여명이 추도식을 방해하는 집회를 열었다. 도쿄도의회와 도쿄도의 구의회 의원들이 다수 참석한 이 집회에서 참석자들은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용서할 수 없다”는 적반하장격의 발언을 하며 학살 피해자들을 욕보였다.

도쿄 가쓰시카 구의회 의원인 스즈키 노부유키는 “최근 한·일 분쟁 원인은 한국의 거짓말에 있다”면서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정하는 망언을 쏟아냈다. 스즈키는 2012년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에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고 적은 말뚝을 묶어놓는 이른바 ‘말뚝 테러’를 했던 인물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