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서 열린 간토대학살 조선인 추도식…우익들 “사실과 다르다” 방해

입력 2019-09-01 17:00
1일 일본 도쿄 스미다(墨田)구 요코아미초(橫網町)공원에서 진행된 간토(關東)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에서 정토진종 승려 오야마 고센씨가 불경을 외며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일본에서 간토(關東, 관동) 대지진 당시 집단 학살을 당한 조선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추도식이 진행됐다. 반면 추도식장 근처에서는 일본 우익들이 모여 추도식을 방해하는 집회를 열었다.

일조(日朝)협회 도쿄도합회 등 일본 시민단체들은 1일 도쿄 스미다(墨田)구 도립 요코아미초(橫網町) 공원의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앞에서 추도식을 열었다. 이들은 간토 대지진 당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처참하게 학살당한 희생자들을 추도했다.

추도식에는 400여명이 참석했다. 김순자 한국전통예술연구원 대표는 이날 진혼무를 추며 희생자들의 혼을 위로했다. 추도문 낭독과 묵념, 헌화도 이어졌다.

추도식에 메시지를 보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은 추도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메시지로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고노 전 장관은 “간토대지진 당시 유언비어에 의해 목숨을 빼앗긴 한국, 조선의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이런 역사를 기록해 전달하면서 민족 차별 없이 서로를 존중하며 돕는 사회를 만들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다나카 유코(田中優子) 호세이(法政)대 총장은 “간토대지진 때 유언비어와 선동으로 목숨을 잃은 조선인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애도를 표한다”며 “당시 일어난 일의 원인이 된 ‘일상의 차별’을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간토 학살 사건으로 희생된 조선인 시신. 독립기념관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간토 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도쿄 등 간토지방에서 발생한 7.9 규모의 대형 지진이다. 당시 이 지진으로 희생된 사람만 10만5000여명일 정도로 피해 규모가 상당히 컸다. 그러나 이를 두고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방화한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져 자경단, 경찰, 군인 등이 재일 조선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당시 독립신문은 이렇게 학살된 조선인의 수가 6661명에 달한다고 기록했다.

그간 일본 사회에서 간토대학살은 부정되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돼왔다. 하지만 최근 ‘역사 수정주의’가 일본 내에서 득세하며 학살의 역사적 사실 자체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현 도쿄지사는 2017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추도문을 보내지 않았다.

과거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이노세 나오키(猪瀨直樹),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등 도쿄지사들이 재직 중일 때 매년 9월 1일 열리는 간토대학살 조선인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온 것과 상반된 행보다.

우익들은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에 적힌 조선인 희생자 수에 대한 근거가 희박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고이케 지사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였다. 또 대지진 희생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법요식에서 애도의 뜻을 이미 표명했다는 점을 들어 추도문을 거부하고 있다.

1일 일본 도쿄 스미다(墨田)구 요코아미초(橫網町)공원에서 간토(關東)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이 열린 가운데, 추도식장에서 불과 40m 떨어진 곳에서 일본 극우 인사들이 집회를 열어 방해하고 있다.

한편 이날 추도식장에서 40m가량 떨어진 곳에서는 일본 우익 40여명이 추도식을 방해하는 집회를 열었다. 도쿄도의회와 도쿄도의 구의회 의원들이 다수 참석한 이 집회에서 참석자들은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용서할 수 없다”는 등의 적반하장식 발언을 이어갔다.

도쿄 가쓰시카(葛飾)구의회 의원인 스즈키 노부유키(鈴木信行)는 “최근 한일 분쟁 원인은 한국의 거짓말에 있다”며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정하는 망언을 쏟아냈다. 스즈키는 2012년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에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일본 명칭)는 일본 영토’라고 적은 말뚝을 묶어놓는 이른바 ‘말뚝테러’를 했던 인물이다.

이들의 억지 주장은 스피커를 통해 퍼지며 추도식장의 불경 소리와 섞여 추도식을 방해했다.

1일 일본 도쿄 스미다(墨田)구 요코아미초(橫網町)공원에서 진행된 간토(關東)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이 열린 가운데, 일본 시민들이 추도식장 주변에 마련된 대학살 관련 전시물을 보고 있다.

북한은 이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간또(간토)땅을 조선사람의 피로 물들인 만고 죄악’이라는 제목의 정세론해설에서 “일제 살인귀들처럼 자연재해까지 타민족 말살의 기회로 악용하여 수많은 사람을 무참히 학살한 예는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일본 반동들은 저들이 걸머진 법적, 도덕적 책임을 회피해보려고 발악하고 있다”며 “일제가 우리 인민 앞에 저지른 모든 죄악의 대가는 철저히 계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이날 우리민족끼리, 조선의 오늘, 평양방송 등 대외용 매체들에서도 간토대학살 관련 내용을 잇따라 보도하며 일본의 만행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