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주말은 전쟁터 같았다… 화염병 최루탄 난무, 공항 마비 시도까지

입력 2019-09-01 16:57 수정 2019-09-01 17:02


홍콩의 주말은 전쟁터 같았다. 체포와 테러위협, 홍콩 정부의 집회 금지 조치에 시위대는 곳곳에서 바리케이트를 쌓고 불을 지르는 등 더욱 격렬하게 저항했다. 경찰도 물대포와 실탄 경고사격 뿐아니라 지하철 전동차 안까지 들어가 최루액을 뿌리고 곤봉을 휘두르며 시위대를 체포했다. 시위대는 또 2주 전과 마찬가지로 홍콩 국제공항 마비를 시도하기도 했다.

홍콩 시위대는 1일 오후 3시쯤부터 홍콩 국제공항 버스정류장 주변 물품들을 가져다 바리케이트를 치고 공항 내로 들어가는 길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이미 이날 공항으로 통하는 주요 교통로를 차단해 공항 기능을 마비시키자고 SNS를 통해 공지를 했었다. 시위대가 바리케이트를 치자 경찰이 출동했다. 시위대가 공항으로 통하는 길을 차단하면서 공항을 이용하려는 승객과 승무원들은 버스에서 내린 뒤 걸어서 공항까지 걸어가는 장면이 연출됐다.

홍콩 시민들은 앞서 31일 경찰이 집회를 전면 불허하는 조치를 내리자 사전 신고가 필요없는 ‘종교 집회’와 ‘쇼핑 활동’을 내세워 곳곳에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홍콩 재야단체인 민간인권전선의 집회가 예정됐던 도심 센트럴 차터가든 공원에도 오후 3시를 넘어가면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날은 2014년 8월 31일 중국이 홍콩 행정장관 간접선거제를 결정한 지 5년째 되는 날이다.

홍콩섬 동쪽 코즈웨이베이에서는 쇼핑 명목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기독교단체들은 완차이 지역의 한 체육공원에서 ‘종교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센트럴 지역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 코즈웨이베이부터 끊없는 행렬이 이어지면서 센트럴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인파로 가득했다.

시민들은 “우리의 자유를 지키자” “자유를 위해 싸우자” “우리는 민주주의를 원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일부 시위대는 빨간 바탕에 17개 노란 별로 나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를 그려넣고 ‘차이나치‘(ChiNazi·赤納粹)를 새긴 깃발을 들고 나와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를 풍자하기도 했다.

시위대 행렬에는 20여 개의 대형 성조기를 흔드는 젊은이들도 있었고, 영국 깃발도 간간이 보였다. 휠체어를 타고 나온 노인도 눈에 띄었다. 시민들은 최근 시위지도부에 대한 체포와 백색테러에 분노하고 있었다.



퀸즈웨이 플라자에서 마난 레이 리(27)는 “경찰이 아무리 시위 지도부를 잡아가도 소용없을 것”이라며 “지도부는 없고 우리 한 명, 한 명이 모두 지도부다”라고 말했다. 삼 호(22)는 “체포나 백색테러를 하고 인민해방군으로 우리를 위협해서 시위를 막을 수 있다고 보면 착각”이라고 자신했다. 홍콩 매체는 이날 시위에 ‘저항의 날’이란 제목을 달았다.

숫자도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시위대가 홍콩 정부청사와 인민해방군 건물 등을 둘러싸고 구호와 욕설을 하며 격렬해지자 오후 5시 30분 무렵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해산에 나섰다. 시위대는 벽돌과 화염병 등을 던지며 저항했다. 경찰은 최루탄에 이어 시위대 식별을 위해 파란 물감을 섞은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경찰에 밀리자 시내 곳곳으로 후퇴해 시위를 이어가면서 바리케이트를 치고 불을 질렀다.

완차이 지역 오조 호텔 앞에서는 시위대가 바리케이드에 불을 지르는 바람에 호텔 문앞까지 화염이 번져 아찔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불길이 호텔 입구 계단까지 번지자 처마에 있던 스프링클러가 작동해 불길이 잡혔다.

경찰은 시위대와의 충돌이 격해지자 최정예 특수부대인 ‘랩터스 특공대’를 지하철 객차 안에 투입해 시위대를 대거 체포했다. 경찰은 프린스 에드워드 역안에서 불법집회 참가 등의 혐의로 40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SNS에 유포된 영상을 보면 경찰이 객차 안에 들어가 곤봉을 휘두르며 최루 스프레이를 뿌렸고, 최루액을 맞고 바닥에 주저않은 젊은이들이 울부짖는 모습이 보인다.

홍콩 언론은 “정예 경찰이 시위대를 쫓아 지하철역에 들어가 곤봉으로 때리고 최루액을 뿌리며 체포한 것은 전례 없는 폭력과 혼돈의 상황”이라고 전했다.

홍콩=글·사진 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