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가 오는 10월 31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시한을 앞두고 의회 정회를 전격 결정했지만 이번주 의원들의 입법에 따라 좌초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 시민단체 등이 이번 의회 정회가 헌법 위반이라며 법원에 금지명령을 신청한 것에 대한 법리 공방도 이번주 시작되는 만큼 존슨 총리는 취임 이후 첫 위기 국면을 맞게 됐다.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1일(현지시간) 노동당 등 야당 하원의원들이 3일 의회에 돌아오는 대로 오는 10일 전후 시작될 의회 정회를 저지하기 위한 법안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존슨 총리가 노딜 브렉시트를 단행하기 위해 의회 중단을 선택했다고 보는 야권에서는 법안에 아예 브렉시트 시한을 늦추는 방안도 담을 것으로 보인다. EU 측도 최근 영국에 브렉시트 시한을 늦출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를 방문한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지난달 31일 “이번 주가 노딜 브렉시트를 저지할 마지막 기회”라면서 “노딜 브렉시트를 저지하고 총리가 우리를 도널드 트럼프(미국 대통령)의 손에 갖다 바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하원에서 노딜 브렉시트 저지 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노동당은 존슨 내각 불신임 투표를 추진할 방침이다. 집권 보수당에서 노딜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야당의 입법 노력에 동조하고 있어 존슨 총리에게 타격을 줄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난 7월 보수당 당 대표 경선에서 존슨 총리와 맞붙었던 로리 스튜어트 전 국제개발부 장관은 스카이뉴스에 “노딜 브렉시트를 선택하겠다는 것은 업청난 실수”라면서 “보수당 소속 하원의원 10여 명이 노딜 브렉시트를 막기 위해 존슨 내각에 반기를 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10여 명의 반대도 충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하원에서 보수당은 겨우 1석 차이로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앞서 존슨 총리는 지난 28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오는 10월 14일 의회에서 ‘여왕 연설’을 요청했고, 여왕은 전례에 따라 이를 승인했다. 이에 따라 의회는 오는 9월 9∼12일 주부터 여왕 연설이 열리는 10월 14일까지 한 달가량 정회된다. 영국에서는 여왕 연설 전 의회를 정회하는 관행을 가지고 있다. 이번 조치에 따라 하원에서 브렉시트를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은 3주도 채 남지 않게 됐다. 다만 마이클 고브 국무조정실장은 BBC와 인터뷰에서 “브렉시트에 앞서 민생 법안들을 서둘러 처리하기 위해 의회 일정을 조정했을 뿐”이라며 “의원들은 3일 복귀한 이후 브렉시트에 대해 논의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의회 정회를 저지하기 위한 법적 절차도 이번주 본격화한다. 3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5일 런던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각각 “의회 정회는 위법이자 위헌”이라는 소송과 관련해 공판이 시작된다. 특히 런던 고등법원에서 진행되는 소송에는 존슨 총리에 앞서 1990년대 보수당을 이끈 존 메이저 전 총리가 가세해 눈길을 끈다.
다만 앞서 30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최고 민사법원은 “의회 정회 중단을 막기 위한 임시 명령을 내려달라”는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의 조안나 체리 의원 요청을 기각했다. 현 단계에서는 임시 명령의 필요성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존슨 총리의 결정에 분노한 영국 시민 수천 명이 주말인 지난달 31일 런던을 비롯해 전국 주요 도시에서 일제히 항의 시위에 나섰다. 시위대는 ‘민주주의를 수호하라’ ’쿠데타를 멈춰라’ ‘의회 셧다운에 저항하라’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시위대는 총리 집무실이 있는 런던 다우닝가로 몰려가 “보리스 존슨은 부끄러운 줄 알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