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년 동기 대비 소비자물가가 올해 8~10월 사이 사상 첫 마이너스(-) 상승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성장률 하락) 우려가 나오고 있다. 통화 당국은 연말에 접어들면 물가를 끌어내리는 공급 측 압력이 낮아지면서 물가상승률이 반등할 것으로 내다본다.
한국은행은 지난 30일 금융통화위원회가 한은 기준금리를 현 1.50%로 유지키로 결정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8월 이후 물가에 대한 하방 압력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유가가 지난해 같은 시기와 비교해 상당히 낮은 수준인 데다 농축수산물가격도 하락세를 보이는 탓이다.
1일 한은 경제통계시스템을 보면 전년 동기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2월 1.3%에서 올해 1월 0.8%로 내려선 뒤 7월(0.6%)까지 7개월 연속 0%대를 이어갔다. 3월에는 2년 8개월 만에 가장 낮은 0.4%까지 내려갔다. 한은은 향후 상승률이 더 낮아져 당분간 0% 내외를 오르내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물가 상승률이 0%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 발표 후 기자간담회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이맘때쯤 농축수산물 가격이 폭염으로 급등한 적이 있다”며 “그에 따른 기저효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고 최근에 석유류 가격이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어 (물가 상승률이) 일시적으로 0% 내외로 상당폭 낮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길면 3개월까지 마이너스 물가 상승률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8~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4%, 2.1%, 2.0%로 비교적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주요 배경 중 하나인 농산물 가격 상승률은 지난해 7월 3.5%에서 8월 9.3%로 크게 확대된 뒤 9월 14.9%, 10월 15.2%, 11월 14.8%, 12월 10.7% 등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8~10월 석유 가격도 각각 12.0%, 10.7%, 11.8%로 크게 뛰었다.
올해는 소비자물가가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을 이어가는 탓에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한 상승률이 8월 이후 크게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전년 동기 대비 7월 농축수산물 가격은 농산물이 0.3% 하락하면서 1.2% 상승에 그쳤다. 지난해 9월 말 배럴당 80달러까지 올랐던 두바이유 가격은 올해 8월 30일 59.1달러로 약 26% 하락했다.
8월 이후 예상되는 물가 상승률 저하는 소비 위축 등에 기조적 현상이 아닌 만큼 디플레이션 돌입을 우려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게 당국 판단이다. 이 총재는 “최근 물가 상승률이 크게 낮아진 것은 공급요인에 주로 기인한 일시적인 현상, 즉 기저효과가 상당히 크다”며 “그래서 (마이너스 상승률이) 두세 달 간의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연말에 다가갈수록 기저효과가 사라져 내년 초에는 물가 상승률이 1%대로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총재는 “(농축수산물과 석유가격 등을 제외한) 기조적 흐름의 물가는 여전히 1%대를 나타내고 있다”며 “이를 감안하면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