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증을 변조해 임대차계약을 맺었다는 진술이 있더라도 실제로 변조했다는 물적 증거가 없을 경우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사기·변조공문서행사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모(22)씨의 상고심에서 “부동산 임대차계약 과정에서 주민번호가 변조된 주민등록증을 사용한 혐의에 대한 증거가 없다”며 변조공문서행사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사건을 춘천지법에 돌려보냈다고 1일 밝혔다. 다만 이씨가 주민번호를 속여 계약을 체결한 혐의에 대해서는 사기로 판단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1997년생인 이씨는 2016년 4월 강원도 홍천의 한 건물 2층에 대한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이씨는 당시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실제 출생연도가 아닌 ‘91’로 시작하는 주민번호를 계약서에 적었다. 건물주가 공인중개사에게 이씨 아버지와 관련된 사람과는 임대차 계약을 맺지 않겠다고 말한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씨의 아버지는 당시 해당 건물 1층을 임대하고 있었으나 임차료 등 1억원 이상이 밀려 있는 상태였다.
1·2심은 “이씨가 91년생으로 적힌 주민등록증을 보여줬다”는 공인중개사 진술을 근거로 이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공인중개사 진술만으로 공문서에 해당하는 주민등록증을 변조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이씨가 제출한 주민등록증 2개 모두 97년생으로 돼 있고 신분증을 발행한 홍천군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대법원은 이씨 주민등록증에서 변조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대법원은 “대검찰청 문서감정 결과 화학약품을 도포한 흔적이 관찰되지 않고 사용 흔적 외 물리적 훼손 흔적도 없다”며 “검찰은 두 주민등록증 어느 것이 변조된 것인지 특정 못하고 구체적인 변조 방법도 못 밝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서감정 결과에 비춰보면 계약 당시 공인중개사가 주민등록증 자체를 안 받았을 개연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판시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