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새가 없는 왕

입력 2019-08-31 22:21

팬들이 그리핀 정글러 ‘타잔’ 이승용에게 붙여준 별명은 ‘정글의 왕’이다. 협곡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그에게 딱 어울리는 칭호다. 다른 팀 코칭스태프도, 그와 경쟁하는 선수들도 그를 ‘리그 최고의 정글러’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러나 이날 패배로 그 멋진 별명도 빛이 바랬다.

그리핀은 31일 서울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2019 우리은행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서머 시즌 결승전에서 SK텔레콤 T1에 세트스코어 1대 3으로 패배했다. 이로써 그리핀은 3시즌 연속 준우승에 그쳤다. 2018년 서머, 2019년 스프링 시즌에 이어 또 한 번 ‘무관의 제왕’ 딱지를 떼는 데 실패했다.

팀이 흔들렸고, 에이스도 흔들렸다. 이승용은 이날 본인의 명성에 못 미치는 활약을 펼쳤다. 시그니처 픽 세주아니를 두 차례 골랐지만, 게임의 실마리를 풀어나가지 못했다. 평소 높은 적중률을 자랑해온 궁극기 ‘빙하감옥’도 유효타로 이어지지 않았다. 4세트 초반 ‘리헨즈’ 손시우(볼리베어)의 콤보에 제대로 호응하지 못한 건 스노우볼의 시발점이 됐다.

물론 그가 부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3세트에는 별명에 걸맞은 플레이로 게임을 지배하기도 했다. 엘리스로 협곡 위쪽을 부지런히 누볐다. ‘칸’ 김동하(아트록스)를 집요하게 노린 갱킹이 상체 균형을 무너트렸다. 세트 MVP도 그의 차지였다.

하지만 상대팀 정글러였던 ‘클리드’ 김태민의 선전이 더욱 두드러졌다. 김태민은 1세트에 탑, 미드에서 연속 갱킹을 성공시키는 등 훨훨 날아다녔다. SKT가 패배한 3세트를 제외한 3번의 경기에서는 모두 김태민이 비교 우위를 점했다. 그는 결승전 MVP에 선정돼 그 활약을 인정받았다.

정글의 왕은 세 번째 치명상을 입었다. 그러나 이승용에게는 아직 자신의 통치력을 입증할 수 있는 무대가 남아있다. 1년 중 가장 중요한 대회이기도 한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이다. 오는 10월 유럽에서 열린다. 이곳에서, 정글에는 국경이 없음을 왕은 입증해야만 한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사진=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