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 탄핵 이후 903일… ‘국정농단’ 재판 일지

입력 2019-08-30 16:11 수정 2019-08-30 17:45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을 부른 ‘국정농단’ 사건의 사법적 판단은 지난 29일 대법원 상고심을 끝으로 사실상 마무리 됐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내린 지 2년 5개월 만이다. 대법원은 삼성에 ‘경영권 승계 작업’이라는 현안이 존재했고,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이에 부정한 청탁이 있었으며, 삼성이 최순실씨에게 건넨 말 3마리 역시 뇌물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 보이콧한 朴…1심 징역 24년→ 2심 징역 25년

2017년 3월 10일 파면된 박 전 대통령은 같은 달 31일 구속됐다. 박영수 특검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 혐의로 박 전 대통령을 재판에 넘겼다. 적용된 혐의만 18개, 뇌물 혐의액은 592억원에 달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10월 13일 구속 연장이 결정되자 사흘 뒤 열린 80차 공판에서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재판 보이콧을 선언했다. 같은 날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도 전원 사퇴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선고기일에도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2018년 4월 6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첫 법원 판결은 징역 24년에 벌금 180억원이었다. 4개월 뒤 열린 2심에선 형량이 더 늘어 징역 25년에 벌금 200억원이 선고됐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삼성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을 뇌물로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삼성 경영권 승계를 위한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과 공모 관계인 최씨는 1심 징역 20년에 벌금 180억원, 2심 징역 20년에 벌금 200억원을 선고받았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혐의는 14개가 겹쳐 재판부의 판단도 대부분 동일했다.


李 1심 징역 5년→집행유예… 다시 재수감 위기

박 전 대통령 2심의 판단은 그보다 앞서 열렸던 이 부회장 1심 판단과 유사하다. 2017년 2월 17일 구속된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열흘 앞두고 구속기소 됐다.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5개 혐의가 적용됐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433억원 상당 뇌물을 제공·약속한 혐의였다.

2017년 8월 25일 열린 이 부회장 1심은 ‘세기의 재판’으로 평가받았다. 이날 이 부회장이 선고받은 징역 5년은 2006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이후 재판에 넘겨진 재벌총수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형량이었다. 재판부는 핵심 혐의인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 72억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16억원을 뇌물로 인정했다.

반면 이 부회장의 2심은 1심과 전혀 다른 판결을 내놨다. 삼성의 승계 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따라서 부정한 청탁도 없었다고 봤다. 승마지원 내용 중에선 삼성이 최씨에게 제공한 말 3마리의 소유권이 최씨에게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말 구입액 34억원은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2018년 2월 5일 이 부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받고 석방됐다.


대법원, 고심 끝에 “모두 파기환송”… 올해 안에 결론 날까

대법원은 지난 2월11일 국정농단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하급심에서 각각 뇌물죄에 관한 판단이 엇갈려 통일된 결론을 낼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원합의체는 6차례 심리를 진행한 뒤 지난 6월20일 심리를 끝내기로 합의했다. 이후 판결문 작성 등 마무리 작업에 착수해 두 달 만에 선고기일을 잡았다.

대법원은 지난 29일 상고심에서 박 전 대통령, 최씨, 이 부회장의 2심 판결을 각기 다른 이유로 파기하고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박 대통령 사건은 공직선거법상 뇌물 혐의에 대해 다른 혐의와 분리 선고해야 한다며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직선거법 18조에 따르면 대통령 재임 중 저지른 직무 관련 뇌물죄는 여러 혐의와 합쳐 경합범으로 선고할 수 없다. 최씨의 경우 일부 강요죄가 무죄 판단을 받으면서 사건이 파기환송 됐다.

이 부회장 사건은 2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말 3마리 제공’과 ‘승계 작업을 위한 부정한 청탁’을 유죄 취지로 다시 재판하라고 판단했다. 말 구입액 34억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 모두 뇌물이라는 게 대법원의 결론이다.

파기환송심은 보통 6개월 안에 결론이 나지만 사안에 따라 더 길어질 수 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사건에 대해서도 대법원 판결을 받아야 한다. 대법원이 특활비 사건에 대한 심리 절차를 준비 중인 점을 고려하면 박 전 대통령이 모든 형사 재판을 확정받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야권 일각에서 제기한 ‘내년 총선 전에 박 전 대통령이 사면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불확실성이 커졌다. 대통령이 고유 권한인 사면권을 행사하려면 대법원 판결이 확정돼야 한다.

이 부회장 역시 끝까지 혐의를 다툴 경우 파기환송심 선고가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판단한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횡령액수는 2심보다 50억원 늘어난 86억원이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죄는 횡령액이 50억원이 넘으면 징역 5년 이상에 처한다. 재수감 위기에 놓인 만큼 이 부회장이 검찰과 치열한 공방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한편 대법원이 ‘삼성에 경영권 승계 작업이라는 현안이 존재했다’고 인정하면서 검찰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수사는 속도를 낼 전망이다. 검찰은 삼성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앞두고 이 부회장이 대주주인 제일모직의 자회사 삼성바이오의 가치를 고의로 부풀렸다고 의심하고 있다. 대법원의 판단으로 검찰 주장에도 힘이 실린 셈이다. 지난해 12월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증거인멸 등으로 임직원 8명을 구속기소 했지만, 본류인 분식회계에선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한 상태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