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1.50%로 동결했다. 대내외 경기 변동 추이를 당분간 지켜보자는 판단이다. 지난달 금리인하를 단행했기 때문에 추후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질 경우 사용할 ‘무기’로 아껴두겠다는 포석도 깔렸다.
다만 한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할 가능성은 더 커졌다. 한은은 수출과 투자 부진이 지속하는 가운데 소비마저 어려워지면서 한국 경제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미·중 무역분쟁 심화, 지정학적 리스크 증대도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어 연내 추가 금리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은은 30일 기준금리를 연 1.50%에서 동결하기로 결정한 뒤 발표한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서 “국내 경제의 성장세가 완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상승압력이 낮은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되므로 통화정책의 완화기조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과정에서 향수 거시 경제와 금융안정 상황의 변화를 면밀히 점검하면서 완화 정도의 조정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덧붙였다.
한은은 지난달 금리인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이달에는 ‘금리인하 카드’를 추후 경기 상황 대응을 위해 아껴둘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현재 대내외 경제 여건이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두 달 연속 금리를 내릴 경우 시장 불확실성을 오히려 더 키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리인하가 추가로 이뤄질 경우 부동산 시장이 또다시 과열 양상에 접어들 수 있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서울 집값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한은이 추가 금리인하라는 ‘방아쇠’를 당기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달 4주차 서울 아파트 가격은 0.03% 상승했다. 전주(0.02%)에 비해 0.01% 포인트 상승폭이 커졌다.
금리인하시 대출 여건이 좋아져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이 흘러들어가고 가격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 가계부채 증가를 부채질하는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가계 빚 잔액은 1556조1000억원이다. 지난 3월 말에 비해 16조2000억원(1.1%) 증가했다. 1분기 증가폭인 3조2000억원(0.2%)보다 커졌다.
다만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아 연내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은 더 커진 상황이다. 한은은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세계 경제는 교역이 위축되면서 성장세가 둔화했다. 미·중 무역분쟁 및 이에 따른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 등으로 주요국 국채금리와 주가가 큰 폭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내 경제의 불활실성이 커졌다는 문구를 새로 넣었다. “국내 경제는 미·중 무역분쟁 심화, 지정학적 리스크 증대 등으로 성장 전망경로의 불확실성이 한층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는 설명이다. 경기 인식이 한 발짝 더 후퇴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은 지난달만 하더라도 국내 소비가 완만한 증가세를 이어갔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달에는 “국내 경제는 건설투자 조정과 수출 및 설비투자 부진이 지속하는 가운데 소비 증가세가 약화하면서 성장세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부정적인 평가의 강도를 높인 셈이다.
물가 전망도 더 낮췄다. 한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월 전망경로에 비해 하방위험이 높아져 당분간 0%대 초반에서 등락하다가 내년 이후 1%대 초중반을 나타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달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를 밑도는 수준에서 등락할 것”이라고 표현한 데 비해 눈높이를 더 낮춘 것이다.
다만 ‘디플레이션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최근 물가상승률이 크게 낮아진 것은 공급 요인에 주로 기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관건은 추가 금리인하 시기다. 올해 남은 금통위는 오는 10월 16일, 11월 29일 두 차례밖에 남지 않았다. 경제 상황에 따라서는 내년 1분기에 추가 금리인하를 한 차례 더 단행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은이 한 차례 금리를 더 내리면 역대 최저금리(연 1.25%)와 같아진다.
이 총재는 “통화 완화의 정도가 어디까지일지는 지금 예단해 말하기는 어렵다. 대외 리스크 요인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국내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종합적으로 보고 경제지표를 확인하며 정책을 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아져 환율 변동성이 커진 만큼 향후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금융·외환시장 상황 변화에도 유의하겠다”고 덧붙였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