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포용국가 기반 강화를 명목으로 내년 예산안에서도 보건·복지·노동 등 사회안전망 성격의 예산을 크게 늘렸다. 전체 예산 513조5000억원에서 3분의 1에 이르는 181조6000억원을 복지 예산으로 편성했다. 다만 복지 지급액과 수혜대상 확대로 고정지출이 대폭 증가하는데도 증세를 고려하지 않는다. 지속가능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의심이 섞이는 이유다.
정부는 29일 2020년 예산안을 발표하고 보건·복지·노동 예산으로 올해보다 12.8% 증가한 181조6000억원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전체 예산의 35.4% 규모다. 이 예산은 대부분 노인·청년·장애인 등 취약계층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취지의 ‘복지 예산’이다. 실업자가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사회보장성으로 지급하는 구직급여는 2조3330억원 증액됐다. 노인 기초연금 예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생계급여 예산은 각각 1조6813억원, 5871억원 늘었다.
복지 예산은 앞으로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는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2023년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를 올해보다 68만명 늘어난 252만명으로 추산한다. 기초연금 수급자 수도 올해 538만6000명에서 2023년 661만3000명으로 늘고, 돌봄서비스를 받는 독거노인 비율은 44.4%에서 60.2%로 증가한다고 예측한다.
올해 소득 하위 20%를 대상으로 25만원을 줬던 노인 기초연금은 내년부터 30만원으로 오르고, 지급 대상은 소득 하위 40%로 확대된다. 각종 사회보장성 급여의 지급액이 커지는 데다 수혜자까지 늘어 정부 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내년에 공적연금 관련 예산은 56조1525억원으로 올해(50조3116억원)보다 5조8409억원 늘었다. 이 가운데 3조9841억원이 ‘국민연금 급여 지급’에 쓰인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사회보험의 보험요율 증가분을 아직 산정하지 못했는데, 고령층 국민연금 지급액이 늘다 보니 발생한 문제다.
하지만 재정 확보는 불투명하다. 기재부는 2023년까지 정부 재정지출이 연평균 6.5% 증가하고 재정수입은 연평균 3.9% 늘어난다고 추정한다. 수입보다 지출이 늘어나는 속도가 빠르지만, 정부는 증세에 신중하다. 상당한 반발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증세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인구구조 때문에 복지 지출이 늘 수밖에 없는데, 정부가 국민의 직접적인 조세부담을 높이기보다는 아직 여유가 있는 국가채무를 높이는 선택을 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한국의 조세부담률(국내총생산 대비 조세 총액 비율)은 19.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인 25.0%(2017년 기준)를 밑돈다. 세금과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을 합산한 금액의 GDP 대비 비율을 보여주는 국민부담률도 26.8%에 그친다.
기재부는 2023년에도 국민부담률을 올해보다 0.6% 포인트 늘어난 27.4%로 유지할 방침이다. 이 때문에 ‘증세 없는 복지’로 국가의 재정건전성이 급격하게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복지는 한번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으므로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재원 조달계획도 마련해야 한다”며 “증세 없는 복지는 지속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