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인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브렉시트 시한을 앞두고 오는 10월14일까지 5주간 의회를 정지시키자 영국 내에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여전히 논란과 우려가 많은 브렉시트를 앞두고 민의를 대변하는 의회를 중단시키면서 ‘민주주의 파괴’라는 비판이 잇따르는 것이다. 존슨 총리에 대한 불신임 투표 목소리와 ‘의회중단 반대 청원’ 급증 등 역풍이 심해지고 있다.
영국 가디언, BBC방송 등은 28일(현지시간) 노딜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의회 중단을 결정한 존슨 총리에 대해 ‘독재자’ ‘쿠데타’ ‘헌법 위반’ 등 원색적인 표현으로 비판하고 나섰다고 보도했다.
제1야당 대표인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존슨 총리)는 의회를 정회할 게 아니라 의회에 참석해 질문에 답변함으로써 책임을 져야 한다”며 “무엇이 두려워 의회 중단을 시도하는가”라고 비판했다.
코빈 대표는 내각 불신임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존슨 총리가 하는 일을 막기 위한 입법을 가장 먼저 시도할 것”이라며 “적절한 시점에 내각 불신임안으로 도전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코빈 대표는 존슨 총리의 제안을 받아들인 여왕에게도 항의 편지를 썼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영국 의원들은 이미 스코틀랜드 법원에 의회 정회가 불법이라고 판결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며 “이것이 실패한다고 해도 친 EU 의원들은 부족한 시간에도 브렉시트를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하원의장 존 버커우 의원은 “헌법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라며 “국민들이 뽑는 의원들의 권리를 짓밟는 범죄”라고 지적했다.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겸 스코틀랜드국민당(SNP) 대표는 존슨 총리를 ‘변변치 않은 독재자’(tinpot dictator)로 표현하며 “그는 민주적인 가치를 무자비하게 짓밟았다”고 맹비난했다. 섀도 내각에서 재무장관을 맡은 존 맥도넬 의원은 트위터에 “실수는 하지 마라, 이것은 매우 영국적 쿠데타다”라고 썼다.
존슨 영국 총리는 앞서 다음달 3일 예정된 의회 회기 개시를 5주 동안 연기해 10월14일 개원하기로 했다. 교육과 보건, 범죄 대응 등 여러 국내 정책을 담은 입법안 추진을 위해서라는 이유였지만, 외부에선 의회의 브렉시트 논의를 원천봉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비판이 잇따르자 존슨 내각은 브렉시트 논의를 막기 위한 꼼수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마이클 고브 영국 내각장관은 “브렉시트에 대해 논의할 ‘많은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BBC방송에 말했다.
하지만 브렉시트 반대론자들은 분노하며 거리로 나왔다. 이날 밤 영국 의회 앞에서는 시위대가 “쿠데타를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존슨 총리의 결정을 규탄했다. 이들은 반(反)브렉시트 손팻말과 유럽연합기를 흔들며 런던 다우닝 10번가 총리 관저까지 행진했다. 현지 언론들은 주말을 기점으로 시위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국교인 성공회의 주교 25명도 노딜브렉시트가 빈자와 사회적 취약 계층에 경제적 충격을 가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온라인에서는 의회 정회를 철회하라는 청원이 하루 만에 10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영국 의회사이트의 공개 청원에 올라온 ‘의회정회를 중단하라’는 청원에는 29일 오후 5시(한국시간)까지 약124만명이 동의했다.
스콧 루카스 버밍엄대학 국제정치학 교수는 존슨 총리의 의회 정회 결정에 “1930년대 이후 가장 큰 헌법상 위기”라며 “심지어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연정과 의회는 ‘게임의 규칙’에 동의했기 때문에 헌법상 위기는 없었다”라고 지적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