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일본은 정직해야 한다”며 “일본 정부가 어떤 이유로 변명하든 과거사 문제를 경제 문제와 연계시킨 게 분명한데도 대단히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정직’을 강조하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의 책임이 강제징용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일본에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미국이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연일 우려의 뜻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도 대일(對日) 비판 수위를 낮추지 않았다. 일본이 먼저 태도를 바꿔야 대화에 응할 수 있다는 뜻을 미국 정부에 분명히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또 지소미아 종료 국면에서 원인을 제공한 일본 대신 한국에 대해서만 실망감을 밝혀온 미국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일본은 경제 보복의 이유조차도 정직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근거 없이 수시로 말을 바꾸며 경제보복을 합리화하고 있다”며 “한국과 아시아 여러나라에 불행한 과거 역사가 있었다. 그 가해자가 일본이라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과거의 잘못을 인정도 반성도 하지 않고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가 피해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덧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한·일 갈등이 과거사 문제에서 시작된 만큼 일본이 먼저 침략의 과거를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은 2차 대전의 잘못을 반성한 독일을 예로 들며 “과거를 기억하고 성찰한다는 것은 끝이 없는 일”이라며 “한번 반성 또는 합의를 하고 과거는 모두 지나갔다는 식으로 끝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과거를 직시하는 것에서 출발해 세계와 협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문 대통령의 모두발언은 이례적으로 영문본으로도 번역, 배포됐다. 과거사를 외면하고 있는 일본의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의 작심 발언은 일본 뿐 아니라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회의에서 독도 문제를 거론하며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첫 희생이 됐던 독도를 자신의 영토라고 하는 터무니없는 주장도 변함이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미국은 우리 군의 독도방어훈련을 두고 “한·일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독도 언급과 대일 작심 발언은 일본의 수출 보복 이후 중립적 자세를 취해온 미국에 우리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전날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불러 “지소미아 종료와 관련해 공개적이고 반복적인 실망 표시를 자제해 달라”고 밝힌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무리 한·미가 동맹국이지만 자국과 국민의 이익 앞에 어떤 것도 우선시 될 수 없다”며 “향후 소통을 통해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안보 빈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대응책으로 강력한 재정을 내세웠다. 문 대통령은 “그 어느 때보다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다”라고 내년 513조원 규모 예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올해 대비 7.4% 증가한 내년도 국방 예산등을 언급하며 “사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아니더라도 우리 경제가 가야 할 방향이었다”고 설명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