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제외 문제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두고 일본 언론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안보상 위협 때문에 한국에 수출 규제 조치를 내렸다는 일본 정부 주장이 WTO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극우 성향 산케이신문은 29일 ‘한국의 WTO 제소, 주도면밀한 전략이 필요한 일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본 측은 한국의 WTO 제소 움직임에 대해 안보상 수출관리 조치일 뿐, 무역 제재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면서 “심리가 한국 측에 유리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있어 주도면밀한 외교전략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일 각의에서 한국을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맞서 우리 정부는 지난 12일 일본을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상응 조치를 취했다.
산케이는 “언뜻 보면 한국의 WTO 제소는 합리성을 결여한 것처럼 보인다”면서도 “WTO는 한국의 제소에 따라 일본의 조치만을 심사할 뿐, 한국의 상응 조치는 일절 고려하지 않는다(아라키 이치로 요코하마 국립대 교수)”라고 전했다. 아울러 WTO 분쟁해결 절차상 일본이 한국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를 문제삼아 제소하는 것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21조는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는 물자의 수출을 규제토록 허용하는 예외 규정이 있다. WTO는 2014년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제품의 자국 영토 통과를 막은 조치에 대해 지난 4월 러시아 측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양국이 크림반도를 두고 무력 분쟁을 벌이는 상황이어서 규제 조치가 불가피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다만 한·일 무역 분쟁에도 이 같은 잣대가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처럼 실제 교전이 벌어질 만큼 위급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외국산 제품이 안보에 위협이 될 경우 수입을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자국법 조항을 들어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추가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WTO는 이 사안에서는 미국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산케이는 “미국의 수입 제한 조치는 크림반도 분쟁과 비교하면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근거가 약하다. WTO는 미국의 주장을 기각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일본에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은 지난 27일 한국의 WTO 제소 움직임과 관련해 “세계 각국이 백색국가로서 우대하는 일본을 한국만 제외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일본을 어떻게 제소할지, 그 사고방식에 대해 묻고 싶다”고 말했다고 NHK가 보도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