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29일 ‘일본 정부는 과거사 반성은 외면한 채 경제보복 이유를 수시로 말 바꾸기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적에 “한국 측에 국제법 위반 상태를 해결하라고 계속 요구할 것”이라는 주장을 거듭 밝히며 책임을 회피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가 첫 경제보복 조치로 수출 규제를 강화했던 불화수소의 한국 수출량은 한 달 만에 80% 이상 급감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한국 대통령의 발언 하나하나에 코멘트 하는 것을 삼가겠다”면서도 “한·일 관계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구 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이므로 우리로서는 한국 측에 대법원 판결로 야기된 국제법 위반 상태를 해결하라고 계속해서 강력히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임시 국무회의에서 “일본은 정직해야 한다. 경제 보복의 이유를 정직하게 밝히지 않은 채 수시로 말을 바꾸며 이를 합리화하고 있다”며 “어떻게 변명하든 과거사를 경제 문제와 연계한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가 연장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에 대해서는 “한국 측에 현명한 대응을 계속 강하게 요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국가 간 신뢰’와 ‘안보’를 이유로 수출규제를 강행하면서도 안보 협정인 지소미아는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일본 정부는 이날 일본 정부가 대(對) 한국 수출규제 품목으로 지정한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의 한국 수출량이 한 달 만에 80% 이상 급감했다 내용이 담긴 통계도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급감 이유까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지만, 일본 언론들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의 영향이 크다고 보면서, 한·일 관계가 더 악화할 수 있다고 봤다.
일본 재무성이 29일 공개한 올해 7월 품목별 무역통계를 불화수소의 지난달 한국 수출량은 479톤으로 전월 대비 83.7% 떨어졌다. 수출액으로 보면 지난달 약 4억엔으로 전월 대비 1억9000만엔 줄었다. 32.6%가 감소한 것이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첫 경제보복 조치 결과가 일본 정부의 공식 통계로 확인된 것이다. 앞서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7월 4일부터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의 수출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재무성 관계자는 “수출량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이유까지는 통계에서 알 수 없다”고 말했다고 일본 NHK방송은 전했다. 하지만 교도통신은 “(불화수소 수출량 감소는) 한국으로의 수출규제 강화 때문으로 보인다”며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선명해지면 한국이 반발을 강화하는 것은 필연적이고, 한·일 관계도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아사히신문도 “수출규제 강화조치의 대상이 된 농도 30% 이상 제품이 어느 정도 포함됐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수출규제) 조치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불화수소 외에 나머지 2개 품목에 대해서는 수출 통계가 여러 방식으로 나뉘어 집계되는 등의 이유로 첫 수출규제가 3개 품목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상태라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다만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3개 품목 중 불화수소의 일본 시장 의존도가 44.6%로 가장 낮았고, 나머지 두 품목은 의존도가 90%를 넘어 더 큰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