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까지 검찰의 수사 배경 해석에 신중했던 여권의 기류가 돌변한 건 이날 오전 언론 보도를 통해 피의사실 공표가 이뤄졌다고 판단하면서다. 이 대표는 “누가 출국 금지됐다는 둥, 부산에 있는 어떤 분이 대통령 주치의를 하는 데 기여를 했다는 둥 벌써 검찰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여러 개 있다”며 “이전까지는 언론의 과장 보도, 가짜뉴스라고 한다면 어제부터 나오는 뉴스들은 피의사실 유출이라 볼 수 있다. 가장 나쁜 검찰의 적폐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특히 “(과거 검찰이) 피의사실 유포해서 인격살인하고,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있지도 않은 논두렁 시계를 가지고 얼마나 모욕을 주고, 결국은 서거하시게 만들지 않았는가”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논두렁 시계 사건은 2009년 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 당시 노 대통령에게 전달된 1억원짜리 시계를 권양숙 여사가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했다는 내용의 검찰발 보도를 지칭한다. 이 대표는 앞서 오전에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검찰의 압수수색과 관련, “언론에는 취재를 시키며 관계기관과는 전혀 협의를 안 하는 전례 없는 행위가 벌어졌다”며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길이란 생각을 안 할 수 없다”고 쏘아붙였다.
오후에 긴급히 소집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피의사실 유출이 인사청문회 진행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검찰이 수사 정보를 유출해 그에 해당하는 분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관련된 의혹을 확산해서 인사청문회에 영향을 준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만약 재발한다면 수사를 책임지고 있는 특수2부장, 서울중앙지검장이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에서는 문 대통령이 윤 총장에게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공정하게 수사해달라”고 당부하긴 했지만, 인사청문회가 열리기도 전,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식으로 수사가 진행된 것에 대해 적잖이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다. 홍 대변인은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준 것 아니냐’는 지적에 “검찰 수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답했다. 또 ‘인사청문회까지 검찰 수사를 중단하라는 요청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아니라고 답변하며, “검찰에 수사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공정하게 수사해 진실을 국민에게 밝혀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이번 압수수색 시점이 조 후보자의 검찰 개혁안 발표 다음 날이라는 점에서 검찰의 조직적 반발이라는 의심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 법사위원은 “적어도 1주일 이상 준비한 것 같은데, 후보자가 검찰 개혁 방안을 발표하니 그날 아침에 딱 영장 신청해서 그 다음 날 바로 집행한 것 아니냐”며 “검찰로선 조 후보자가 낙마하면 좋고, 안 돼도 저런 법무부 장관이 어떻게 검찰을 개혁하느냐고 흠집을 낼 수 있다고 본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민주당의 이 같은 강력 반발은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 진행 상황 유출이 비극적인 서거로 이어지면서 현 여권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저서에서 노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던 당시를 회고하며 “검찰과 언론이 한통속이 돼 벌이는 여론재판과 마녀사냥은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다. 뇌물로 받은 1억원짜리 시계를 논두렁에 갖다 버렸다는 ‘논두렁 시계’ 소설이 단적인 예”라고 기록한 바 있다. 무엇보다 당시 검찰의 브리핑이나 언론 보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가 많이 남는다며 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누구보다 강조해왔던 노 대통령이 결국 검찰의 정치적 수사의 희생양이 됐다는 것에 대한 여권의 분노는 이때부터 뿌리를 깊이 내렸다. 그리고 이는 문 대통령이 이후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강조하는 배경이 됐다.
반면 야당은 이해찬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 대표는 범죄를 수사하는 검찰이 나라를 어지럽힌다고 한 건지, 권력 실세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 나라를 어지럽힌다는 건지 분명하게 답하라”고 비판했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전례 없이 간악한 이 대표의 입이 또 문제”라며 “이 대표는 검찰을 ‘정권의 부속품’, ‘정략적 도구’로 생각하는가. 야당일 때는 ‘검찰 독립’, 여당일 때는 ‘검찰 관여’를 외치는 형국”이라고 꼬집었다.
과거 노무현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천정배 의원도 “집권 여당 대표의 이런 발언은 검찰 수사권에 부당 개입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검찰이 압수수색 전 여당과 청와대에 알렸어야 한다는 말이냐”며 비판했다. 천 의원은 “검찰이 사모펀드, 웅동학원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자료를 확보하는 등 신속하게 수사할 필요성이 있고, 또 후보자가 임명되기 전이 더 낫다고 독자적으로 판단을 했던 것 같다”며 “검찰이 정치적 고려 없이 수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나래 박재현 김용현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