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시울 붉힌 김성수 본부장 “日 대응, 과학기술인들 반드시 해내야”

입력 2019-08-28 16:34 수정 2019-08-28 16:52
김성수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사전브리핑 형식으로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100% 해결은 있을 수 없지만 이것은 과학기술인의 자존심이 걸린 것이다. 우리가 다 해결할 수는 없어도 반드시 해결해야할 부분이 있다. 이번에야말로 과학기술이, 과학기술인들이, 그 사업들이 결과를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김성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 투자전략 및 혁신대책’ 발표 브리핑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이번 연구개발에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김 본부장은 30년간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일해온 유기화학 분야 신약 개발 전문가다. 서울대 화학교육과 졸업 후 1988년 카이스트(KAIST)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화학연구원 선임 연구원으로 출발해 생명화학연구단장, 신약연구종합지원센터장 등을 거쳐 지난해 1월 화학연구원장에 취임했다.

김 본부장은 30년간 현장에서 뛰어난 연구 성과를 창출한 전문가로 현장의 큰 기대를 받으며 지난 5월 말 차관급인 과학기술혁신본부장으로 취임했다. 취임 약 1달 만에 일본 수출규제 조치를 맞닥뜨리고 정부 차원의 주력 산업의 연구개발(R&D) 계획 수립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주력 산업의 펀더멘털을 강화시켜야 한다. 주력산업의 R&D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R&D 대책의 큰 방향”이라고 밝혔다.

이어 “언제부턴가 첨단 산업, 미래 산업에 대한 R&D 투자가 증가했다. 반면 반도체, 디스플레이 같은 국가 주력산업은 기업이 알아서 하고, 정부 투자가 소홀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또 “모든 R&D를 다 할수는 없다. 틈새가 있다면 꼼꼼하게 메꿔서 산토끼도 중요하지만 집토끼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며 “정부 부처 간 R&D 사업의 이어 달리기, 기초 및 실용화 함께 가는 함께 달리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사전브리핑에서 김성수 과학기술혁신본부장과의 일문일답.

-지금까지 부품·소재 등 기초 R&D 연구가 많았다. 그러나 이것이 제품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기술성숙도(TRL)가 높지 않아서였다.
“실제 품목 분석을 하면 TRL 수준이 10단계 중 7단계에 머문 기술도 많았다. 10단계까지 가야 상용화되는데 그렇지 못했던 이유는 시장에서의 수요를 맞추는 또 다른 차원의 일이 존재했다. 이번 대책에는 공급기업과 수요기업을 연결해주는, 공급기업과 수요기업간 갭을 극복하는 것을 R&D를 통해 해결할 생각이다.”

-우리나라가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추진한 게 1980년대 또는 1990년대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산화가 잘되지 않은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나라가 언제부터인가 사실은 첨단산업, 미래산업 쪽의 R&D 투자가 많이 늘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와 같은 어떻게 보면 국가의 주력산업은 '기업이 알아서 하겠지, 정부는 거기에 신경을 쓸 필요가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더불어 이 분야 R&D를 하는 분들은 사실 특허나 논문 나오거나 상용화로 이어지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까 연구자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특허나 논문 쪽으로 표현하기 좋은 그런 쪽으로 R&D가 이어졌을 것이다. 정부 연구개발에 '사각지대'가 생긴 것이다. 이번 대책의 또 근본적인 방향은 주력산업의 기초를 강화하겠다. 산토끼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집토끼를 지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장기적인 대책, 근본적인 대책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가장 중요한 것은 R&D가 필요한 분야가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품목 분석을 하다 보니 긴급하게 대응할 R&D가 있다. 그리고 긴급하게 대응해 효과를 낼 수도 있다. 그런데 R&D는 긴 호흡으로 냉정하게 봐야한다. 현재 시장이나 기술력을 극복하기보다는 차세대 기술이나 시장은 아직 미묘하지만 4차 산업시대에 꼭 필요한 기술은 초기단계부터 꾸준하게 긴 호흡으로 연결해서 R&D를 할 것이다. R&D 추진형태도 이번에 좀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아까 기술개발을 했는데 미처 상용화까지 못한 결과들을 현재의 시스템에서 다시 하려면 중복성 심의에 걸리지만 중복성 심의를 거둬내고 다시 R&D를 투입할 수 있게 하겠다. 또 후불형 R&D도 지금 고민 하고 있다.”

“(고서곤 과기정통부 기초원천연구국장)이번에 단기 차원 말고 신소재를 개발하는 장기적인 R&D가 있다. 나노미래소재 원천기술 개발사업은 올해 상반기 예타를 통과했고, 그밖에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도 소자 부분과 관련된 R&D를 저희가 신규로 내년부터 추진한다. 이런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R&D가 아니라 기업의 수요를 많이 반영을 해서 추진할 계획이다. 인력 양성과 관련된 프로그램도 함께 추진한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사실 원하는 R&D를 하지 않는 이상 중소기업이 연구·개발을 했던 결과물이 상용화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세금으로 지원을 하다 보니 특혜로 비칠 수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
“그 부분은 R&D보다는 다른 차원에서의 대책이 필요하다. 지금 8월 5일에 발표된 대책에 의하면 R&D뿐만 아니고 세제·인허가·금융까지도 있다. 전반적인 것을 봐달라. 그것을 어느 부분에 특혜를 준다, 어느 기업에 뭐 이런다, 라고 하면 사실 그 논리에 빠질 것 같다.”

-국가 주도로 산학연 연구개발 역량의 총동원 체계에 대한 자세한 설명 부탁드린다.
“우리가 정부사업에서 했던 것 중에 국가지정연구실(NRL)이라는 사업이 있었다. 그나마 소재 쪽에 경쟁력을 갖고 있는 연구그룹이다. 150개 정도 사업이었는데 불산, 폴리이미드 등 쭉 파고든 그룹이 있다. 일본의 소재부품력 경쟁력도 장인정신에 있다. 즉, NRL(국가지정연구실) 사업의 경험을 되살려 소재개발을 해보자는 것이다. 소재도 신약개발과 같이 꾸준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기에 이를 국가적으로 지정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지정한 후 지역에 있는 기업, 주변 대학 등의 역량을 결집해 나갈 것이다.”

-마지막 한 말씀.
“취임한 지 아직 100일이 안 됐는데 부임 약 1달 만에 일본수출규제 사건이 터졌다. 100%까지 해결하는 것는 있을 수 없지만 이것은 과학기술인의 자존심이 걸린 것이다. 모든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다 해결할 수는 없어도 반드시 해결해야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R&D, 과학기술로 해결해야 된다는 것은 분명하며 이번에야말로 과학기술이, 과학기술인들이, 그 사업들이 결과를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