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공인회계사(CPA) 2차 시험에서 ‘부정 출제’가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논란이 된 문항 2개를 모두 정답 처리하고, 문제를 낸 출제위원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 서울의 A 사립대 고시반에서 치른 모의고사 문제가 실제 시험에서 유사하게 나왔다는 의혹을 살펴본 결과다.
금감원 관계자는 “모의고사와 출제된 2개 문항의 형식과 내용이 동일·유사하다”며 “수험생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 문항들을 모두 정답 처리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28일 2019년도 제54회 CPA 최종 합격자를 발표하면서 ‘2차 시험 부정출제 의혹 관련 조사 결과’를 함께 공개했다. 박권추 금감원 전문심의위원은 “출제위원이 출제장에 입소하기 전 A대 모의고사 출제자에게 모의고사 자료를 전달받은 사실이 확인됐다”며 “해당 출제위원을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험의 공정성이 훼손된 이상 사법 기관의 강제 수사 착수가 불가피하다는 취지다.
부정 출제 의혹이 제기된 건 2차 시험 회계감사 과목의 ‘외부감사인 선임’ 관련 2개 문항이다. 지난 5월 A대 CPA 고시반에서 실시된 모의고사에 ‘외부감사인 선임 절차’와 ‘상법상 감사가 있는지’를 묻는 문제가 나왔는데, 그해 6월 말 치러진 CPA 2차 시험에는 ‘외부감사인 선정 주체’와 ‘감사위원회 설치 여부’에 관한 문항이 등장했다.
이에 수험생들은 “2차 시험 문제 일부가 특정 대학 고시반 학생들에게 사전에 모의고사 형식으로 배포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 수사를 의뢰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제기됐다. 금감원은 지난달 1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출제 과정에서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는지 등을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부정 출제 가능성은 낮다’는 분위기였다. 당시 금감원 관계자는 “기출 문제나 다른 교재에서도 나오는 보편적 내용”이라며 “문항 질문과 표현 방식도 차이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는 달랐다. 금감원에 따르면 해당 출제위원은 지난 5월 초 A대학 모의고사 출제자에게 연락해 “출제와 관련된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다. A대학 모의고사 실시 이전이었다. 출제위원은 금감원 조사 과정에서 “올해 CPA 출제위원으로 선정될 수 있어서 관련 자료를 확보하려는 목적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카카오톡으로 모의고사 문제 파일을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지난해 책을 공동으로 집필한 사이였다.
금감원 관계자는 “모의고사 문제를 받은 이상 출제위원으로써 유사한 문제가 출제되지 않도록 관리할 의무가 있다”며 “공정한 시험에 하자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2개 문항이 모두 정답으로 처리됐지만 올해 CPA 최종 합격자 수(1009명)은 변함이 없다고 금감원은 밝혔다. 회계감사 부분합격자만 10명 증가했다. 이 문항들은 배점이 총 3점에 불과하고 난이도가 쉬워 정답률이 높은 탓에 전체 당락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게 금감원 설명이다.
한편 A대학 CPA 고시반 특강에서 시험에 나올 문제를 사전에 뽑아줬다는 의혹에 대해 금감원은 “부정 출제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박 심의위원은 “특강 자료 등이 전반적 주제나 핵심 단어를 나열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말했다. 다만 “특강자가 지난해 CPA 시험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자신이 출제위원이었던 사실을 누설하는 등 비밀유지 서약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재직 중인 대학에 징계를 의뢰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유사 사례의 재발을 막기 위해 CPA 시험 출제 과정을 전반적으로 뜯어 고치겠다고 밝혔다. 먼저 출제위원의 인력 풀(POOL)을 넓히고 선정 기준과 절차를 재정비하기로 했다. 또 과목당 출제위원 수를 늘리고 문제 출제와 선정 업무를 분리할 방침이다.
‘출제 검증’과 ’사전·사후 관리’도 강화하기로 했다. 출제위원이 속한 대학의 모의고사 문제를 입수해 ‘유사성’을 검증하고, 과목별 검토 요원의 수도 늘릴 계획이다. 현재 1차 시험에만 가능한 ‘이의신청제’도 2차 시험까지 확대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외부 전문가 자문을 거쳐 내년 시험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