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제조사가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8년 만이다. 증인으로 참석한 최창원 전 SK케미칼 대표이사와 채동석 애경산업 대표이사 부회장은 27일 열린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구체적인 보상이나 증거인멸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위원장 장완익)는 이날 서울시청 다목적실에서 첫 청문회를 주최했다. 오전에는 최 전 대표를 비롯해 김철 SK케미칼 대표, 최상락 전 유공 연구원, 채 부회장,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기업 고위 관계자가 참석했다. 채 부회장과 안 전 대표는 애경그룹 오너일가다. 채 부회장은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차남, 안 전 대표는 장 회장의 사위다.
최 전 대표는 이날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서 국민 여러분께 대단히 송구스럽다”며 “피해자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있고, 피해 지원과 소통이 부족했다는 따가운 질책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채 부회장도 “재판이 진행 중이고, 조사를 받거나 구속 중”이라면서 “재판 결과에 따라 대응하고 사회적 책임을 성실하게 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피해보상 대책에 대해선 즉답을 피했다. 최 전 대표는 “어떤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라며 “상장사이기 때문에 많은 이해관계자가 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채 부회장도 “피해자분들과 지속적인 소통을 했지만, 의견 차이가 있어서 지연되고 있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믿을 수 없다” “살인기업”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청문회에 참석한 김정백 경남 가습기 피해자모임 대표는 “애경을 믿고 구입했는데 16살 막내가 죽었다”며 “막내가 병원에서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그 시간에 애경은 로비하고 증거인멸하고 사과 한 번 제대로 하지 않고 법정에서는 모르쇠로, 면피할 궁리만 했다”고 말했다.
이날 청문회에선 SK케미칼·애경산업, 두 회사 간 협의체 운영과 대관·언론 로비, 증거인멸 의혹이 집중 제기됐다. 그러나 증인들은 이를 모두 부인했다. 법무법인 김앤장에 증거인멸을 자문한 적이 있다는 의혹에 대해서 채 부회장은 “전혀 모른다”고 답변했고, 최찬묵 김앤장 변호사(애경 자문)도 “자문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는 것은 법적 의무”라고 답을 피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2011년 4~5월 출산 전후 산모 8명이 폐가 굳는 원인 미상의 폐질환으로 입원했다가 4명이 숨지며 세상에 알려졌다. 특조위에 따르면, 지난 2월 말까지 1386명이 가습기 살균제에 따른 폐질환으로 사망했다.
사건발생 당시 SK케미칼과 애경은 원료가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된 줄 몰랐다고 주장하며 처벌을 피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부터 검찰이 재수사한 결과 두 회사가 안전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판매한 사실이 드러났다. SK케미칼은 안전성을 지적했던 ‘서울대 흡입독성 시험 보고서’도 은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광현 전 애경산업 대표는 지난 23일 증거 인멸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