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애경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게 사과…청문회는 ‘맹탕’ 지적

입력 2019-08-27 18:10
27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2019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최창원 전 SK케미칼 대표이사가 사과 발언을 하고 위원장석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관련 첫 청문회에서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사고 발생 이후 12년 만에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피해 보상은 재판 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며 입장을 유보했다. 이날 청문회는 기존에 나온 사실만 거론돼 ‘맹탕 청문회’라는 지적이 나왔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27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를 열었다. 최창원 전 SK케미칼 대표이사, 채동석 애경산업 대표이사 부회장, 윤성규 전 환경부 장관 등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최 전 대표이사는 방청석에 있는 피해자들에게 허리 굽혀 사과했다. 그는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피해자 지원이 부족했다. 법적 책임 여부 떠나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진일보된 태도를 보이겠다”고 말했다. 채 부회장도 “피해자분들과 소통하고 협의해 마음을 조금이라도 치유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그러나 구체적인 혐의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했다. 구체적인 보상 계획에 대해서도 판결이 나오면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최 부회장은 “아직 임직원이 재판을 받고 있고 SK케미칼이 상장사인 것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청문회에선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2017년 협의체를 구성해 피해구제법 개정을 저지할 방안을 논의하고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의 내부 동향을 공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조위는 두 회사 전무급들이 2017년 두 차례 회의를 열고 검찰 등의 동향을 파악하고 피해구제법 개정안 저지 방안을 논의한 회의록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채 부회장은 “협의체 구성 사실을 보고받은 적 없어서 몰랐다”고 말했다.

두 기업과 공정위 간의 유착 의혹에 관한 증언도 나왔다. 유선주 전 공정위 심판관리관(국장)은 “공정위가 애경산업과 SK케미칼의 조사 결과를 은폐했다”며 “공정위 퇴직자들이 로펌과 기업에 재취직한 뒤 공정위 직원들과 사적으로 어울려,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유착 의혹을 강조했다.

피해자 측의 김기태 가습기넷 공동운영위원장은 “기업들이 인체 유해성을 사전 인지하고도 제품을 제조·판매했는지 여부를 파고들어야하는데 다 나온 사실들만 짚었다. 부실한 청문회에 피해자들은 더욱 분노를 느낀다”고 비판했다.

피해자 대표로 나온 김태종씨는 “우리 집사람은 폐가 13%만 남아 인공호흡기 없이는 단 1분도 숨을 못 쉰다. 그런데도 가습기살균제 판 기업은 사과 전화 한번 없다”고 호소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