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넘치는 혐오 표현, 소셜미디어와 유튜브가 통로”

입력 2019-08-27 17:57
혐오 표현에 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 혐오 표현 경험 유무 및 연령별 경험률.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일상 생활에서 무심코 쓰이는 혐오 표현들이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5월 취객 난동을 제압하는 이른바 ‘대림동 여경 영상’이 부분적으로 편집돼 퍼지면서 ‘무능력한 치안 조무사’라는 조롱글이 달린 것이 대표적이다. 성인 10명 중 6명은 이처럼 성별, 출신 지역, 직업 등을 이유로 차별하거나 혐오감을 주는 표현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권위는 27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혐오 표현 진단과 대안 마련 토론회’를 열어 혐오 표현 사용 실태와 국민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혐오 표현은 2010년대 들어 늘어나며 일상화됐다. 혐오 표현이 퍼지는 주된 통로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다. 정치인과 언론이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내면서 이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토론회에서는 이언주 무소속 의원이 유튜브 채널에 나와 “외국인 노동자는 생산성이 낮다. 한국인과 비슷한 인식 수준을 가지려면 3년은 걸린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한 것이 혐오 발언의 사례로 제시됐다. 한 인터넷 매체는 “성폭력 유도 성공하면 로또 당첨?” “직장 일은 부업, 합의금 뜯어내는 데 혈안”처럼 여성을 폄하하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정치인의 말은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그들이 공개석상에서 하는 점잖은 차별 조장 발언이 사회에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7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혐오 표현 진단과 대안 마련 토론회'를 열고 혐오 표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진행했다. 방극렬 기자

인권위가 지난 3월 성인 1200명을 상대로 실시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4.2%는 혐오 표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혐오 표현의 대상으로는 특정 지역 출신(74.6%)이 가장 많았다. 여성(68.7%), 노인(67.8%), 성소수자(67.7%), 이주민(66.0%), 장애인(58.2%)도 있었다. 정치인이 혐오를 조장한다는 응답은 58.5%, 언론이 부추긴다는 답변은 49.1%로 조사됐다.

혐오 표현을 접한 사람들 중 대다수(87.3%)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직접 반대 의사를 표시’(41.9%)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그냥 무시하거나(79.9%)거나 피하는(73.4%)는 경우가 많았다. 또 혐오 표현을 들었다는 응답은 60%가 훌쩍 넘었지만 ‘내가 혐오 표현을 쓴 적이 있다’는 응답은 9.3%에 그쳤다. 인권위는 “혐오 표현 사용자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사용하는 경우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청소년들은 혐오 표현에 더 많이 노출돼 있었다. 인권위가 지난 5월 청소년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68.3%가 혐오 표현을 접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 22.3%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혐오 표현을 사용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23.9%로 성인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혐오 표현을 쓰는 이유로는 ‘내용에 동의하기 때문’(60.9%)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남들도 쓰니까’(57.5%), ‘재미나 농담’(53.9%) 순으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이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안에 혐오 표현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계획이다. 강문민서 인권위 혐오차별대응기획단장은 “‘한남충(한국 남자와 벌레를 합친 말)’ 같은 표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유튜브는 어떤 식으로 규제할지 등을 논의하고 있다”며 “범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