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창작아케이드는 순수 예술이 아닌 공예·디자인 분야 작가를 대상으로 서울시가 지원하는 유일한 레지던시(작가들에게 무료 혹은 저렴한 임대료를 받고 제공되는 작업 공간)이다. 10주년을 맞은 이곳을 지난 26일 찾았다.
입주 작가 손상우(30)씨가 작업실에서 레진으로 뭔가 만드는 모습이 유리문 너머로 보였다. 대학에서 목조가구를 전공한 그는 레진으로 소반이나 화병, 의자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점포 몇 개를 터서 만든 커뮤니티룸에선 인근 주민 대상 체험교실이 한창이었다. 가죽공예를 하는 박현철(30) 작가가 지역과의 상생 프로그램의 하나로 가죽 지갑 만들기 수업을 하고 있었다. 인근 황학동에서 육류 부산물 도매상을 한다는 류세연(39)씨는 3회 수업 끝에 소가죽이 지갑으로 탄생하자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동네 살면서도 지하 아케이드에 예술가들의 공간이 있는 줄 몰랐다. 횟집까지만 왔지 여기까지 올 생각도 못 했는데….” ‘ㄷ’자로 구부러지는 지하상가 모퉁이에서 인쇄업을 하는 이미경(55)씨는 “여기 작가들은 우리가 못하는 걸 한다. 물건 파는 장사가 아닌 예술을 한다는 게 좋다. 다들 젊은 분들이어서 활력도 생기고…”라면서 “이분들이 인쇄 맡기면 무조건 ‘지급(빨리해주는 것)’이죠, 뭐”하며 엄지를 세웠다.
신당창작아케이드는 10년 전 지하 아케이드의 절반이 문을 닫는 등 슬럼화될 위기에 놓이자 예술로 낙후된 공간을 바꾸자며 들어섰다. 층높이가 낮은 공간적 특성을 고려해 공예·디자인·패션에 특화했다. 지하 아케이드 총 100개 점포 중 절반을 레지던시 공간으로 쓰는데, 30여 명 작가가 입주해 있다.. 개인 작업실 외 공동 작업실, 쇼룸도 있다. 지금까지 205명(팀)의 작가가 이곳을 거쳤다. 방송가와 SNS에서 ‘미대 오빠’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김충재 작가가 이곳 출신이다.
박 작가의 수업을 보조하던 나전칠기 작가 이지민(29) 씨는 “다른 장르 작가들과 한 공간에서 작업하니 금속 가죽 등 다른 장르 재료의 물성에 대해 관심을 끌게 됐다. 요즘엔 그것과 가죽을 융합해서 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혼자 작업했더라면 이런 시도는 결코 못 했을 거”라고 강조했다. 지하 아케이드를 걷다 보면 입주 작가들이 상인들과 함께 작업한 소파 천갈이, 벽기둥 장식 등이 상업적 공간에 예술적 ‘토핑’을 얹은 것처럼 발견됐다. 매년 가을 벌이는 축제인 ‘황학동 별곡’ 때 만든 것들이다.
작가들에게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작가는 “공예작업은 분진이나 냄새가 많이 나 환기가 중요하다. 지하에 작업실이 있는데도 환풍시설이 공동작업장 말고는 없다 보니 아쉽다”고 토로했다. 상업 공간과 예술가 공간이 섞여 있는 것도 때론 불편하다. 나희영 매니저는 “어떤 작가는 상인들이 셔터를 닫는 저녁 8시 이후에 스프레이 작업을 하기도 하고, 시장이 쉬는 매월 마지막 셋째 주 화요일만 소음이 나는 작업을 하는 작가도 있다”고 전했다.
삼청동 정독도서관 인근 송원아트센타에서는 10주년 기획전 ‘비약적 도약’전(9월 8일까지)을 하고 있다. 독창성의 아우라가 있는 가방과 의자 장신구 그릇 등 젊은 감각의 디자인 제품을 만날 수 있다. 회화 조각 설치 사진 등 공예와 연관된 순수미술 작품은 신선하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