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가 격화되는 가운데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젊은 층과 대화에 나서며 유화 제스처를 보였다. 하지만 시위대가 요구하는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 철회나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한 독립 조사위원회 구성 등에 대해 거부 입장을 밝혔다. 따라서 이번 대화가 오히려 시위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람 장관은 26일 일부 각료들과 함께 20∼30대 주축의 홍콩 시민 20여 명과 차이완 지역의 ‘유스 스퀘어’에서 비공개 회동을 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7일 보도했다. 이번 회동은 중국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중련판)이 주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참가자들은 람 장관에게 “시위대의 5대 요구 가운데 먼저 ‘송환법 완전 철폐’와 ‘독립 조사위원회 구성’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람 장관은 뚜렷한 설명없이 “송환법을 완전히 철회하기는 어렵다”고 했고, 독립조사위원회에 대해서도 “홍콩 경찰이 시위대의 과도한 폭력 사용으로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다”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매튜 청 홍콩 정무부총리는 별도 기자회견에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갈등과 젊은이들이 급진적인 이유를 알고 싶다”며 “‘노란 조끼’ 시위 후 타운홀 미팅을 1만여차례 개최한 프랑스 정부를 참조해 대화에 나서고 싶다”고 말했다.
람 장관은 27일에는 경찰이 실탄과 물대포를 사용한 것과 관련, “경찰은 시위대에 최소한의 물리력을 행사해왔다”며 “폭력을 미화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폭력에 맞서기 위해 폭력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홍콩 정부의 비상사태 조례 발효 가능성에 대해서는 “폭력과 혼란을 막을 법적 수단이 있다면 홍콩 정부는 이를 검토해야할 책임이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홍콩 경찰은 시위가 격화하자 흉기 뿐아니라 총탄까지 막을 수 있는 진압복을 중국 본토에서 주문했다고 관영 글로벌타임스가 전했다. 홍콩 경찰은 광둥성의 한 업체에 한벌당 가격이 5000홍콩달러(약 77만원)인 진압복 500벌을 주문해 일부는 이미 3개 경찰서에 보냈다. 업체측은 이 진압복이 기존 것보다 가볍고 흉기나 총탄까지 막을 수 있다고 전했다.
중국 매체들은 홍콩 시위대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면서, 시위대 편을 드는 서방의 시각에 대해 거칠게 성토했다.
관영 환구시보는 “서방 언론은 경찰이 경고사격한 것을 폭력의 상징으로 부각시키고, 시위대가 더 거칠고 치명적으로 경찰을 공격하는 것은 가볍게 본다”고 비판했다.
이어 “폭도들이 경찰버스를 쇠몽둥이로 때려 부수고, 경찰관들을 뒤쫒아가면서 때리자 경찰이 권총을 꺼내 경고사격을 한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뉴욕. 런던에서 발생했다면 양국 경찰은 어떻게 대응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인민일보도 논평에서 미국이 시위대의 폭력 행위를 ‘평화시위’라고 하고, 경찰의 법 집행은 ‘진압’이라 부르는 것은 “밑도 끝도 없는 이중기준”이라고 비난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